[너섬情談] 개봉영화관

2024. 5. 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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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소설가

그 비일상적인 공간에 있는 순간만큼은
스크린에 꽂힌 강한 연대의 공동체가 된다

“일과 오락이 규칙적으로 교대하면서 조화를 이룬다면 생활은 즐거운 것이 된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다. 러시아 대문호의 명언을 소개한 뒤 갑자기 변방 작가인 내 말을 이어서 송구하지만 나 역시 ‘오락이 없는 삶은 연골이 사라진 마라토너의 무릎과 같다’고 여긴다. 오락, 즉 취미는 우리 삶이 원활히 굴러가는 데 기여하는 필수 영양소이니까. 그래서 내 취미는 뭐냐고? 중학생 때부터 유지해 온 내 취미는 영화감상이다.

한데, 이를 단순히 취미라고 부르면 영화에게 미안해진다. 왜냐하면, 내 삶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와 같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갱스터 영화를 즐겨 보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인생 첫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봤다. 그 후로 ‘타인의 삶’, ‘델리카트슨 사람들’처럼 인간성을 탐구하는 작품, ‘그을린 사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같이 만듦새가 뛰어난 영화, ‘호텔 르완다’ ‘블러디 선데이’ 같은 사회성 짙은 작품까지 나라는 한 개인이 성장하는 데에 영화는 외로움을 날려준 친구, 위로를 건네준 선배, 어두운 생에 등잔불을 켜준 스승 역할을 했다. 오늘날 소설가로 먹고사는 데에는 영화의 지분이 7할 이상이 될 것이다.

한데 이렇게만 말하면 영화관에서 명작들만 본 걸로 착각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정반대다. 위에 열거한 영화들은 그간 본 무수한 작품의 극히 일부다. ‘흑전사’, ‘사립학교’, ‘비밀일기’, ‘호소자’, ‘여대생 기숙사’ 등 즐겨 본 작품의 제목을 대면, ‘아니 그런 영화를 돈 내고 봤단 말이야?’라고 반문한다. 이런 말은 뭣하지만, (절대 내 생각이 아니라) 세간으로부터 한심하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 태반이다. 지인들은 ‘그런 건 때가 되면 케이블 TV에서 틀어주잖아’라고 하는데 이는 확실히 반박할 수 있다. 내가 만끽한 작품들은 케이블 TV에서도 틀어주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런 영화까지 개봉관에서 보느냐”는 질문에, 한때는 B급 소설가이기에 이런 정서의 영화를 봐야 한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영화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내게 늘 두 시간 남짓 삶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별로 하지도 않았지만) 학업의 스트레스로부터, 직장인 시절에는 업무 부담으로부터 벗어났고, 지금은 창작의 노고로부터 잠시 해방된다.

1980~90년대에는 극장에서 음주·흡연이 가능했기에 바닥은 흘린 맥주로 인해 끈적끈적했고 화면에는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깔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영화관 특유의 운치로 여길 만큼 이끌렸다.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거주지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 시간을 내어 어둡고 음침한 곳에 모여 오로지 영사기에서 뿜어내는 빛에만 집중한다. 그 빛이 자아내는 영상에 사람들은 손뼉 치며 웃고, 훌쩍이며 울고, 깜짝 놀라 비명도 지른다.

각자 삶의 고민도, 방향도, 목표도 다르지만 그 비일상적인 공간에 있는 순간만큼은 오직 스크린에만 눈을 둔, 소리 없는 강렬한 연대의 공동체가 된다. 게다가 우렁하게 울리는 음악은 무딘 귀를 깨운다. 일상에서 귀 기울이지 않았던 사소한 배경음, 즉 탁자 위에 잔 놓는 소리 등은 무심했던 청각을 깨운다. 결국, 두 시간쯤 모든 걸 집중해 보고 나오면, 내 삶의 구성요소를 새로운 눈과 귀로 보게 된다.

그렇기에 개봉 영화관은 언제나 내게 ‘가장 가까운 일상의 탈출구’였다. 그렇다 해서 현실도피는 아니었다. 30년 넘게 나는 왜 어두컴컴한 공간에 드나들었는지 돌이켜봤다. 그러니 가까이서 보면 ‘일상 탈출’이었지만, 멀리서 보니 그 잠깐의 탈출을 통해 결국은 ‘일상에 더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속에는 늘 삶의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OTT 시대에 이런 말은 어째 고리탑탑하지만 영화관은 여전히 내게 대체재가 없는 놀이공원이다.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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