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흘러나올 때 눈물이 핑…태극마크 달길 잘했다 생각했죠”
재일동포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2·경북체육회)가 한국 여자 유도에 29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안겼다.
세계 랭킹 6위 허미미는 21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무바달라 아레나에서 열린 2024 세계선수권 여자 57㎏급 결승에서 12분19초간의 연장 혈투 끝에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 1위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데구치는 2019년과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이 체급 최강자다. 허미미는 2022년 12월 이스라엘 마스터스 준결승에서 데구치에게 한판패를 당한 아픔을 설욕했다.
허미미는 전화 인터뷰에서 “세계 정상이라니, 꿈꾸는 것 같다.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태극마크를 달길 잘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기세를 파리올림픽까지 이어가겠다”며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휘날리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허미미는 일본 도쿄와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오가며 훈련 중이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건 1995년 일본 대회에서 정성숙(61㎏급)과 조민선(66㎏급)이 동반 우승을 차지한 이후 29년 만이다. 남자부까지 범위를 넓혀도 2018년 아제르바이잔 대회 때 안창림(73㎏급)과 조구함(100㎏급)이 우승한 이후 한국이 6년 만에 수확한 금메달이다.
허미미는 세 번째 도전 끝에 ‘세계선수권 징크스’를 깨뜨리며 파리올림픽 금메달에 청신호를 밝혔다. 한국 여자 유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72㎏급)인 김미정 여자대표팀 감독은 “(허)미미가 4강에서 세계 2위, 결승에서 1위 선수를 연파하고 우승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는 오는 7월 열리는 파리올림픽의 전초전 격이다. 여자 유도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조민선) 이후 28년간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 선생의 후손이다. 허미미가 소속된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 선수 등록 과정에서 허미미의 할아버지 허무부씨가 허석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지역에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다.
일본 유도 특급 유망주였던 그가 한국을 땅을 밟은 건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손녀가 꼭 한국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뜻에 따라 허미미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그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고, 2022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여동생 허미오(20)도 올해 1월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체육회 유도팀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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