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용산, 특검 거부권…야당은 탄핵 시사

현일훈, 정용환, 김정재 2024. 5.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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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일주일여 남겨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거대 야당의 충돌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이 21일 야당에서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야권은 탄핵 추진까지 시사하며 총공세에 돌입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오후 용산 청사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거친 순직 해병 특검법률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돼 7일 정부로 이송된 지 14일 만에 거부권이 행사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이번이 열 번째다.

정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특검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지난 25년간 13회 걸친 특검법 모두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했다며 “이는 단순히 여야 협치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지켜온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야당을 조준했다.

정 비서실장은 그러면서 “특검 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 또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며 “현재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수처가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 했다.

이번 특검 법안이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만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의 특검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했고, 실시간 언론 브리핑을 하도록 해 법상 금지된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도록 한 점도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아울러 “채 상병의 안타까운 사망이 더는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도 이날 8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법안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 “공정성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 명백하다”며 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공방이 ‘야당 입법독주 대 대통령 거부권’의 구도였다면 이번엔 ‘대통령 거부권 대 야당 탄핵 추진’으로 한층 격화되는 모양새다.


야당 “윤 정권, 파도 앞 돛단배”…정부 “특검법 삼권분립 위반”

야권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 곧바로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하고 주말(25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이날 오후 2시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요구 규탄 공동 기자회견’엔 녹색정의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새로운미래 등 6개 야당과 전국민중행동·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소속 500여 명이 집결했다.

맨 앞줄 중앙에 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말했다”며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범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범인임을 자백했으니 이제 그 범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거론했다. 특히 이 대표는 “국민의 분노와 역사의 심판 앞에 윤 정권은 파도 앞 돛단배 같은 신세”라고도 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윤 대통령은 검찰독재에 더해 행정독재로 가고 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의 말로를 기억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우리가 박근혜 독재 정권을 어떻게 쫓아냈나, 촛불항쟁으로 쫓아낸 것 아닌가”라며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도 제2의 촛불항쟁으로, 25일 시작되는 촛불항쟁이 횃불이 돼 온 사거리를 불태우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부결의 관건인 당내 ‘이탈표’를 단속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재표결의 가결 요건은 재적의원(296명)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무소속 윤관석 의원을 제외하면 재적의원은 295명이다. 이들이 전원 출석할 경우 197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민주당(155석)을 비롯한 야권 의석을 모두 더해도 가결 요건에 못 미치는 180석이다. 다만 무기명으로 이뤄지는 재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113명) 중 17명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특검법은 통과된다.

이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윤재옥 전 원내대표는 22대 총선 낙천·낙선·불출마 의원 58명을 일일이 설득하고 있다. 일단 당 지도부는 현재 공개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안철수·유의동·김웅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이탈표가 없어 부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다 접촉하고 있다”며 “단일대오에 큰 이상기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특검법에 대한 높은 찬성 여론 등을 이유로 낙천·낙선한 여당 의원 50여 명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이탈표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설사 28일 본회의에서 부결되더라도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할 태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은 정치가 아닌 법리만, 야당은 여론을 등에 엎고 지지자만 생각하며 서로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21대 국회 마지막의 이 같은 격렬한 충돌이 22대 국회에선 일상화될 것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 정치가 더욱 절망적”이라고 했다.

현일훈·정용환·김정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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