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10번째 거부권…이재명은 '尹=범인'이라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에서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특검법)에 21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했으니 범인이라는 것을 자백한 것이다. 그 범행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맹공했다. 야당이 사실상 탄핵 추진을 시사하면서 양측의 충돌은 더 극단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 행사를 알리며 야당을 조준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청사 브리핑에서 “이번 특검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25년간 13회 걸친 특검법 모두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했다며 “이는 단순히 여야 협치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년간 지켜온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검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 또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며 “현재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수처가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 했다.
이번 특검법안이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만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의 특별검사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했고, 실시간 언론브리핑을 하도록 해 법상 금지된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도록 한 점도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채 상병의 안타까운 사망이 더는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돼 7일 정부로 이송된 지 14일만에 거부권이 행사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10번째다.
다만 여태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야당 입법독주 대 대통령 거부권’의 구도였다면 이번엔 ‘대통령 거부권 대 야당 탄핵 추진’으로 한층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가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을 범인으로 지칭한 데 이어 “윤석열 정권은 파도 앞에 돛단배와 같은 신세”라고 공격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승만의 말로를 기억하라”라며 대통령 하야를 암시하기도 했다.
야당은 좌파 시민단체와 연합으로 이번 주말부터 장외투쟁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우리가 박근혜 독재 정권을 어떻게 쫓아냈나, 촛불항쟁으로 쫓아낸 것 아닌가”라며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도 제2의 촛불항쟁으로, 25일 시작되는 촛불항쟁이 횃불이 돼 온 사거리를 불태우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은 28일로 예정돼 있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부결의 관건인 당내 '이탈표'를 단속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재표결의 가결 요건은 재적의원(296명)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무소속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재적의원은 295명이다. 이들이 전원 출석할 경우 197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민주당(155석)을 비롯한 야권 의석을 모두 더해도 가결 요건에 못 미치는 180석이다. 다만 무기명으로 이뤄지는 재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113명) 중 17명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특검법은 통과된다.
이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윤재옥 전 원내대표는 22대 총선 낙천·낙선·불출마 의원 58명을 일일이 설득하고 있다. 일단 당 지도부는 현재 공개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안철수·유의동·김웅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이탈표가 없어 부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다 접촉하고 있다”며 “단일대오에 큰 이상기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특검법에 대한 높은 찬성 여론을 들어 여당 의원을 설득·압박해 이탈표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설사 28일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는 태세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극한 대치는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은 정치가 아닌 법리만, 야당은 여론을 등에 엎고 지지자만 생각하며 서로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21대 국회 마지막의 이같은 격렬한 충돌이 22대 국회에선 일상화될 것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 정치가 더욱 절망적”이라고 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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