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격 인사…13년전 이건희 '충격의 여름' 떠오른다
이번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장 교체에서 과거 이건희 선대회장의 ‘인사 리더십’이 연상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13년 전 이 선대회장은 한여름인 7월에 이례적으로 ‘불시 인사’ 카드를 꺼내 들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회장 취임 1년 반에 접어든 이재용 회장이 이번 전격 인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 따르면 경계현 사장은 최근 반도체(DS) 부문이 처한 위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부문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 사장은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인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과도 협의를 마쳤다고 한다. 경 사장의 사임과 새 DS부문장 선임 건은 최근 이사회에 사전 보고됐다.
이날 김용관 삼성메디슨 대표이사(부사장) 역시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반도체 담당으로 새로 배치됐다. 김 부사장은 과거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1팀에서 반도체 투자 등을 담당했다. 정기 인사철이 아닌 5월에 반도체 관련된 두 자리만 콕 짚어 바꾼 ‘원 포인트’ 인사다.
2011년 인사의 데자뷔
당시 삼성 내부에서도 여름 인사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실적이 부진했더라도 대체로 정기 인사 때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이 선대회장은 경영에 복귀한 2010년 3월 사내 게시판에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글을 남기며 위기감을 강조했었다. 또 서초사옥에 정례적으로 나와 현안을 챙겼지만, 여전히 내부의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복귀 1년 4개월 만에 깜짝 인사를 실시한 것이다.
외부환경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탄생한 DS부문의 수장을 아들인 이재용 회장이 또 다시 깜짝 인사로 교체한 점도 주목된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 사장이 스스로 사의를 밝힌 건 사실이지만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정기 인사 때까지 기다릴 만큼 외부환경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회장 취임 후 두 차례의 정례 인사에서 번번이 ‘안정’을 택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원포인트 인사가 이 회장의 의중이 담긴 첫 인사로 본다.
삼성그룹은 최근 경영 전반에서 긴장감을 강조하고 있다.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토·일요일 중 하루는 출근하는 주6일제를 실시하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과거 LCD 사업과 달리, 반도체는 삼성그룹의 미래가 달린 핵심 사업인 만큼 전 계열사가 위기 의식을 공유하라는 메시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 반도체 실적은 지난해에 더 안 좋았고 지금은 오히려 개선되는 시점이라 단순히 실적을 문제 삼았다기 보다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강한 인물로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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