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망했는데 춤추고 불꽃놀이…이란 청년들 환호, 왜
20일(현지시간) 이란 당국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의 5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 가운데, 이란 현지에선 추모와 환호라는 상반된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란 국영 매체에선 그를 기리는 추모 인파를 보도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SNS)에선 불꽃놀이를 하며 기뻐하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이 올라왔다.
영국 가디언·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SNS에는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며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22세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의 고향인 사케즈 등 일부 도시에서 불꽃을 터뜨리고 음악을 들으며 환호하는 모습 등이 올라왔다. 또 도로에 있던 운전자들은 서로 경적을 울리며 축하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영국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 밖에서는 여성들이 이란 깃발을 흔들며 춤을 췄다.
수도 테헤란 인근 카라즈의 한 주민은 "도시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졌고,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고 전했다. 테헤란에 사는 한 남성은 "사망 뉴스를 보고 벌떡 일어나 춤을 췄다"면서 "인근 가게 주인은 내게 담배를 무료로 주면서 '이런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나길 바라자'고 말했다"고 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 정부의 인권 탄압을 주도한 인물이다. 약 40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반체제 인사 수천명을 잔혹하게 숙청해 '테헤란의 도살자'라고 불렸다. 지난 2021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더욱 무자비해졌다. 이듬해 아미니 사건으로 전국에서 반(反)정부 성향의 '히잡 시위'가 확산하자 강경 진압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단은 시위대 551명이 사망했고 1500명 넘게 체포됐다고 추산했다.
정부의 가혹한 탄압에 히잡 시위는 지난해 초 수그러들었지만 라이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높아졌다. 특히 20~30대는 정부의 강경 노선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히잡 시위에서 가족을 잃은 한 여성은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시위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며 "우리는 행복하다. 이란의 모든 희생자 가족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했다.
이슬람 시아파의 최대 성지 중 하나인 이란 동부 마슈하드에 사는 20대 여성도 "라이시가 대통령을 맡았던 3년은 악몽같았다"면서 "그의 사망으로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현재는 희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의 인권 상황이 당장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로 지난해 투옥 중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남편 타기 라흐마니는 "라이시의 죽음 자체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국가의 지도 구조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 정치·종교의 최종 결정권자다.
이란 정부는 단속에 나섰다. 외신에 따르면 현지 경찰은 기뻐하는 행동이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체포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테헤란의 주요 거리와 광장에는 군인들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19일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에서 열린 댐 준공식에 참석한 후 헬기를 타고 타브리즈로 돌아오던 중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서 사고를 당했다. 다음날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와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등 탑승자 9명 전원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란 국영 이르나 통신은 헬기 추락 원인이 ‘기술적 고장’이라고 밝혔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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