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독 영부인 외교"라면서, 강제북송엔 입닫은 文의 속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공개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2018년 11월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두고 "첫 단독 영부인 외교"라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관련 합의, 탈북 선원 강제북송, 서해상 공무원 피살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입을 닫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검찰 수사 혹은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고 있는 사안이다. 모든 외교·안보 사안의 최종결정권자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법 리스크'를 피해가려는 의도도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배현진 국민의힘(서울 송파을) 의원은 2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2023년 12월에 김정숙 여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되어 있지만…실제 이 사건의 주범을 따지자면 김정숙 여사가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외교부로 하여금, 대통령이 주체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예산 전용 등 김 여사가 수사받고 있는 국고손실 혐의와 관련한 최종결정권자는 문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첫 단독 영부인 외교". "인도가 초청" 등을 부각한 건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이 정상적인 외교활동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인 한편 자신은 실제로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고도 무리한 지시를 한 것인지, 진짜로 모르고 승인을 한 것인지에 따라 면책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실무선에서 이뤄진 논의를 문 대통령 본인은 알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고, 실무진이 실제로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축약 혹은 누락된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중국과의 사드 합의와 관련해 "이전 정부가 국민에게 공약한 것을 이어받은 것 뿐"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현재 감사원이 사드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 협의회 구성 지연 등에 대해 감사 중인 가운데 "환경영향평가 같은 국내법적인 절차는 다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분명히 했고 "이를 미국도 받아들인 거다"라고 밝혔다. 환경영향평가의 당위성을 다시 강조하면서도 평가 지연 과정에 관여했는지,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2020년 9월 서해상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서는 우리 국민이 북측 영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 동안 문 전 대통령이 헌법상 의무인 국민 보호를 위해 어떤 의사 결정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컸던 사안이다. 서훈 전 국정원장 등은 사건을 은폐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허위공문서 작성)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년 6월 16일) 관련 내용을 서술하던 중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그 기간에 발생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당시 북한에 연락할 길이 없으니 국제상선 통신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수신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어 참 답답했다. 만약 연락망이 가동되고 있었다면 뭔가 노력해볼 수 있을 텐데 속수무책이었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정부의 안일하고 늦은 대처, 이후 고인의 월북 시도를 사실상 조작한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2019년 11월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은 본문에서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부록인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주요일지'에 '흉악 범죄 북한 주민 2명 송환(판문점)'이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전문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2년 만에 민감한 외교 비사(祕事)를 공개하며 논란을 자초하는 모습"이라며 "사법적 사안에 대한 방어적 입장에 초점을 맞췄야 하기 때문에 논란이 된 사건을 자세히 다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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