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 꿈에 나타난 한 남자의 '기막힌 인생'
[장혜령 기자]
▲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 ㈜올랄라스토리 |
갑자기 꿈은 이루어진다?
폴(니콜라스 케이지)은 한 대학에서 진화심리학을 가르치는 종신형 교수다. 수업은 지루하고 가정에서는 존재감이 털끝만큼도 없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지만 녹록지 않다. 아직 쓰지도 않은 원고를 책으로 낼 생각만 하고 있다. 잘나가는 대학원 동기 논문에 아이디어 제공자로 이름이라도 올리고 싶을 정도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사실 폴은 유명해지고 싶어 절박한 처지다.
▲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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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일이 술술 풀리는 것만 같다. 수강생이 얼마 없던 강의가 매일 만석이다. 뉴스 인터뷰 요청, 화보 촬영 등 너무 바빠진다. 한 회사에서는 스프라이트 광고를 제안하고, 내친김에 책도 내줄 것만 같다. 식탁에서 핸드폰만 보며 아빠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던 아이들이 아빠 명성 덕인지 꽤 살가워졌다.
아내도 남편의 유명세를 통해 새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역효과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괴한이 집에 침입하는가 하면 광적인 팬도 생겨났지만 유명인이 감수해야 되는 거라며 다독인다. 폴은 인기에 취해버렸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꿈속에서 폴은 수동적인 관망자, 방관자 역할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살인, 고문, 성폭행범으로 등장해 모두의 악마가 되어버렸다. 폴은 꿈속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가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 자체가 사회악인 민폐남이 되어 버렸다.
결국 학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로 반강제로 휴가를 내고 가족까지 위협과 고초를 겪게 된다. 편하게 식당에서 밥 한 끼도 못하고 쫓겨난다. 과연 유명세를 얻고 싶었던 폴의 꿈은 이루어진 걸까?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악몽이 되어 버린 걸까? 차라리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을 뿐 폴의 위상은 찰나였고 그것마저도 한순간에 추락하고야 만다.
▲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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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남자인 걸까. 존재감 없는 사람,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 폴은 어느 날 일약 스타가 된다. 무기력하고 지질한 평범한 사람의 일장춘몽같이 짠하고 슬픈 감정이 커진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무작위 영상으로 만든 4분짜리 'Nicolas Cage Losing his shit' 영상은 <드림 시나리오>의 기초가 되기 충분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거 출연작을 무작위로 편집한 것인데 그는 이 영상에 좌절했다고 전해진다. 캐릭터의 전사, 극의 맥락과 별개로 분노, 광기의 장면만 편집된 왜곡의 불상사를 염려해서였을 거다. 그는 배우로서의 경력과 이미지를 되돌아봤고 영상은 밈(meme)화 되어 바이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드림 시나리오> 속 폴과 비슷한 일을 겪은 셈인데 현실과 꿈,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영화의 모호한 분위기와 뒤섞여 극한 몰입을 높여 준다.
▲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 ㈜올랄라스토리 |
<해시태그 시그네>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보글' 감독의 신작으로 신체 훼손으로 타인의 관심을 얻고 싶은 인플루언서의 자기 과시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뭐든 순식간에 인기를 얻다가 금방 꺼지고야 마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시각이 코미디로 승화되었다. 최근 SNS를 통한 다양한 사회현상을 융의 정신분석 학점 관점에서 다루기도 한다. 밈, 인플루언서, 캔슬 컬처(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상을 언팔하는 일), 바이럴 등 순식간에 스타와 비호감이 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양상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피그> 이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 없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애매한 표정을 펼칠 때면 아리 에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 한 사람의 다른 사람의 의식에 들어간다는 설정은 스파이크 존스의 <존 말코비치 되기>가 떠오른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장악하는 열연이 은근한 중독성을 유발한다. 집에 돌아가 가려고 누우면 폴이 꿈에 찾아올 것만 같아 불쾌해질 정도로 빠져드는 캐릭터다.
A24의 작품이자 아리 애스터 감독이 제작에 참여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북유럽 감독 크리스토페르 보르글리의 영어권 진출 영화다. 화려한 제작진과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적 이야기의 잔상이 꽤 오래가는 참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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