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선부' 없앤 김정은…"대남 공세 전시 수준으로"

장희준 2024. 5. 2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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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통전부 없애고 '당 중앙위 10국' 개편
전문가들 "공작·공세 기능 강화될 가능성"
김정은, '통일' 대체할 명분은 더 지켜봐야

북한이 남측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뒤 대남 정책을 총괄해온 통일전선부까지 폐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 노선으로 재설정한 만큼 대남 공작도 전시(戰時)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통일전선부를 폐지하고 해당 기능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10국'으로 재편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전날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대남 심리전 등 기능은 변화 없이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통일전선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일부 기능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통일전선부는 대남 업무를 전담해온 노동당 전문부서로, 1990년대 남북 고위급 회담을 거치면서 대남 정책과 회담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부상했다. 이후 산하에 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2016년 국무위원회 산하 국가기구로 승격되면서 대화·교류 기능을 조평통에 넘겼고, 통전부는 대남 정보 수집이나 공작 업무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올해 들어 대남 기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남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주문한 데 따른 조치다.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새롭게 규정한 것도 이때였다. 지난 17일에는 관영매체를 통해 북남관계라는 표현도 '조한관계'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북한이 남측을 '한민족'이라는 특수관계가 아닌 '적대 국가'로 규정한 뒤 일각에선 외무성이 통전부의 기능을 흡수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내각 기구인 외무성이 당 기구인 통전부를 흡수하기엔 위상·인력·전문성 등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규모를 '부'에서 '국'으로 격하했지만, 기능은 노동당 조직에 살려둔 것으로 보인다.

"전시 준하는 공세"…친북세력 활동 달라지나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 앞에서 국정원 직원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이 같은 조직 개편을 두고 단순히 '통일'이라는 명칭을 지우는 수준을 넘어, 북한의 대남 노선 전환에 따라 공세·공작을 강화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남·대적 기구들을 정리하는 것과 별개로, 해당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가 있는 만큼 대남 테러 시도나 친북세력의 새로운 투쟁 활동을 독려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통일전선' 전술을 포기하면서 남북관계를 전쟁 관계로 규정한 만큼 통일전선부의 임무도 전시에 맞는 형태로 전환됐을 것"이라며 "이제 진지하게 '북한판 지하드'를 걱정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공작 업무를 군 정찰총국에서 맡은 만큼 업무상 충돌이 발생하지 않겠냐는 물음에는 "정찰총국이 군사적 (공작) 기능을 맡는다면 10국에선 기존에 통일전선부가 관리해온 여러 대남라인과 우리 사회 내 친북세력, 해외 친북세력 등을 움직이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일전선부의 변화에 따라 간첩을 비롯한 친북세력의 활동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北, 아직 '민족통일' 대체할 명분 못 찾았다

리선권 북한 통일전선부장

다만, 이런 변화를 아직은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 헌법상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돼 있는 것처럼 북한도 그간 남측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과 지도부의 존재 이유에 있어서 '민족 통일'이라는 명분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적대 국가'라는 관계 재설정이 있었지만, 북한이 '통일'이라는 목표를 대체할 명분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남 노선' 전환 이후 내부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이 정도의 큰 전환이 있었으면 노동신문에 정론을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변화 이유를 내부적으로 알리고 주민들이 학습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후속 과정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북한도 '민족 통일'이라는 개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는데,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비전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변화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영철 고문, 리선권 부장 등이 최근 사망한 김기남 전 선전·선동 담당 비서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그대로 올렸다"며 "통일전선부의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서 (통일전선부가 재편된) 10국의 당내 위상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남 업무 내용은 심리전 중심으로 재편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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