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협상, 이번엔 사흘간 서울서…'국방비 연동' 족쇄 벗나
21일 서울에서 사흘간의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2차 회의가 시작됐다. 협상의 관건은 총액과 인상률 책정 기준이다. 특히 국방비 증가율에 따라 매년 한국이 내야 할 방위비 분담금 총액도 올리게 돼 있는 기존의 원칙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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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연동 뜯어고치나
이날 회의는 오전 9시부터 서울 모처에서 한국 측 이태우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와 미국 측 린다 스펙트 국무부 선임보좌관을 수석대표로 진행됐다. 이 대표와 스펙트 대표는 지난달 23∼25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첫 회의에서 서로 기본 입장을 교환했다. 앞서 지난달 미국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한·미 동맹에 대한 강력한 투자"라고 표현한 반면, 한국 측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분담금 규모와 책정 기준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됐다는 평가다.
이번 협상은 출발선부터 녹록지 않다. 2021년 3월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타결된 11차 SMA의 가장 큰 결함으로 지적되는 건 방위비와 국방비가 동반 상승하는 구조다. 당시 양국은 2021년 분담금을 전년 대비 13.9% 증가한 1조 1833억 원으로 책정한 뒤 2025년까지 4년 동안 매해 국방비 인상률을 반영해 올리기로 했다.
당시 국방 중기 계획에 따른 2021~2025년 한국의 국방비 증가율은 연평균 6.1%였다. 한국 측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전문가들도 "애초에 방위비와 국방비가 상호보완적인 성격인데 이 둘을 연동시키는 건 모순"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과거의 다년 협정은 통상 국방비가 아닌 물가 상승률을 방위비 인상에 반영했고, 매해 인상률이 4%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설정했다. 2019년 10차 SMA 때도 국방비 증가율을 반영해 8.2%를 인상했지만 당시는 1년짜리 협정이라 상황이 특수했다.
협상 타결 뒤 문재인 정부도 증액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했다.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2021년 8월 국회에 출석해 "부득이하게 국방 예산 증가율과 연동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의 협상에 전제가 되지 않는다는 양해를 한·미 간에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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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리스크 방지 어떻게
이번 협상이 현협정 만료로부터 1년 8개월이나 앞서 시작된 건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보이지만, 속전속결로 매듭짓더라도 뒤집힐 우려는 여전하다. 미국에서 SMA는 행정 협정으로 간주돼 대통령 결단에 따라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한국을 "부자 나라"라고 부르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임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이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동의했는데 제가 떠난 지금은 아마 거의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주장을 이어갔다.
트럼프가 다른 방법으로 한반도 방위와 관련해 각종 청구서를 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구태여 이전 행정부에서 만들어둔 SMA를 복잡하게 흔들기보다는 한·미 간에 새로운 협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비용 부담을 요구할 수도 있다"며 "일부 비용을 낼 각오를 하되 한국이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잠재적인 리스트를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다년 계약·제도 개선 챙겨야
이외에도 이번 협상은 다년 계약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협상 중 이견으로 1년짜리 협정을 맺어봤자 트럼프 복귀 시 곧바로 차기 재협상에 나서야 하는 만큼 실익이 없다. 이와 함께 매번 국회의 지적만 받고 실질적 성과가 없는 SMA의 제도 개선 측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택한 '총액형'은 방위비의 총액부터 우선 합의한 뒤 지출 세목을 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전 세계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SMA를 맺는 유일한 나라인 일본은 '소요형'을 따른다. 이는 구체적인 지출 세목에 따라 총액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물론 소요형을 따른다고 해서 한국 측 분담금이 반드시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용처를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고 양국 간 정치 상황에 따라 협상이 휘둘릴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미국이 받아가 놓고 정작 쓰지 않아 쌓여있는 미집행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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