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뛰어넘는 활약, KBO리그 '가성비 갑'은?
[양형석 기자]
프로스포츠에서 연봉은 곧 그 선수의 실력과 가치, 그리고 기회를 의미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선수들이 비시즌마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구단과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돈을 벌기 위한 1차원적인 목표 때문만은 아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그렇지 못한 선수보다 더 많은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연봉은 그 선수의 한 시즌 입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물론 많은 연봉이 언제나 좋은 성적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올 시즌 KBO리그 연봉 투타 1위 류현진(한화 이글스)과 박동원(LG 트윈스, 이상 25억 원)의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각각 투수부문 18위(0.83)와 야수부문 16위(1.65)에 머물러 있다(스탯티즈 기준). 냉정하게 말해 올 시즌 투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두 선수는 아직 연봉 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올 시즌 50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많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투타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팀에 큰 도움을 되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입단할 때부터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소위 '코어 유망주' 출신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과 기대 이상의 활약은 매년 각 구단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 때문에 실망이 컸던 구단과 팬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고 있다.
Kt 2루 세대교체, 천성호로 정리 끝
내야수, 특히 2루수의 더딘 세대교체는 kt 위즈의 해묵은 고민이었다. kt는 2015 시즌을 앞두고 FA로 영입해 2021년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고 이제는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된 박경수가 작년까지 팀의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그만큼 박경수의 활약이 꾸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kt가 박경수의 후계자 육성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시즌 kt의 2루 포지션은 천성호라는 선수에 의해 확실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2라운드 전체 12순위로 kt에 입단한 천성호는 2020년 66경기, 2021년 41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도 입지가 낮은 대졸 2년 차 내야수 천성호는 2021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대했고 2023 시즌 퓨처스리그 타격 2위(.350)에 오르면서 전역 후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천성호는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첫 시즌부터 곧바로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지난 3월2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주전 2루수로 출전해 멀티히트를 기록한 천성호는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34타수 18안타(타율 .529) 3타점10득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초반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그렇게 kt의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은 천성호는 올 시즌 kt가 치른 47경기 중 44경기에서 주전 2루수로 출전해 타율 .310 1홈런16타점35득점4도루 OPS(출루율+장타율) .751로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천성호는 3월의 믿기지 않는 활약 이후 4월 타율 .296(108타수32안타), 5월 타율 .178(45타수8안타)로 최근 타격감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득점 4위와 최다안타 9위(58개)에 이름을 올리면서 kt의 1번타자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전역 후 천성호가 kt와 체결한 올 시즌 연봉이 단 4500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성호는 이미 올 시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활약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3년 차에 폭발한 삼성의 거포 유망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경남 양산의 물금고를 졸업한 김영웅은 지난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삼성에 지명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최지민(KIA 타이거즈)이나 윤동희(롯데 자이언츠)보다 높은 순번에 지명됐을 정도로 높은 기대를 모았던 삼성의 핵심 유망주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김영웅은 지난 9월13일 NC다이노스전에서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때려 내면서 삼성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김영웅은 작년 1군에서 55경기에 출전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 .187 2홈런12타점11득점에 그치며 기대만큼 빠른 성장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거포로서의 잠재력은 확실했지만 아직 1군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엔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일부 팬들은 김영웅이 군에 입대해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병역의무를 해결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웅은 올 시즌에도 삼성의 치열한 내야 경쟁에 뛰어들었고 올 시즌 3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면서 삼성의 주전선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올 시즌 45경기에 출전한 김영웅은 타율 .300(170타수51안타)11홈런29타점28득점4도루 OPS .936을 기록하며 삼성의 새로운 간판타자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웅은 올 시즌 삼성에서 홈런과 OPS 1위, 타점과 득점 2위, 안타 3위를 달리며 유망주라는 단어가 무색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만약 삼성이 작년 시즌이 끝난 후 김영웅을 군대로 보냈다면 5월 말까지 팀 내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린 선수가 없었을 것이다. 김영웅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올 시즌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고 있지만 이미 삼성의 미래를 넘어 현재의 간판타자로 떠오른 만큼 확실한 자신의 포지션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명가' 삼성의 부활을 이끌어 갈 만20세 거포 김영웅에게 '유틸리티 플레이어'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8년 차에 서서히 빛을 내고 있는 좌완
LG에서 마지막으로 두 자리 승수를 올렸던 토종 좌완투수는 2019년의 차우찬(티빙 해설위원)이었다. 차우찬은 FA이적생이었기 때문에 LG에 입단했던 선수로 한정하면 2010년의 봉중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토종 좌완에이스 육성에 어려움을 겪던 LG가 올해는 손주영이라는 젊은 좌완투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경남고를 졸업하고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1라운드 전체 2순위로 LG에 입단한 손주영은 국가대표 2루수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보다 지명순위가 높았던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 2년 동안 9경기에서 2패만을 기록하며 1군의 높은 벽을 실감한 손주영은 상무에도 입단하지 못하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손주영의 프로 데뷔 첫 승은 입단 5년 차였던 2021년8월 키움전에서 나왔다.
2022년과 작년 각각 3경기 등판에 그쳤던 손주영은 8년 차가 된 올해 4300만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입단동기 김혜성의 올 시즌 연봉이 6억50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높지 않은 연봉이다. 하지만 손주영은 올 시즌 LG의 5선발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훌쩍 뛰어넘는 활약을 해주고 있다. 실제로 올 시즌 손주영이 기록하고 있는 3.89의 평균자책점은 LG의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4.88), 디트릭 엔스(5.37)보다 좋은 수치다.
특히 손주영은 올 시즌 9번의 선발 등판 중에서 6번이나 5이닝 이상 투구하며 선발투수로서 역할을 다했고 그 중 3번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손주영의 퀄리티 스타트 3회는 올 시즌을 앞두고 4년50억 원의 FA계약을 체결했던 토종에이스 임찬규(2회)보다 많은 기록이다. 비록 빈약한 득점지원 때문에 시즌 성적은 2승3패에 머물러 있지만 손주영은 올 시즌 LG에서 가장 믿음직스런 선발카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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