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직구사태 나비효과? 수면 떠오른 '전통시장 보호법'

최은경, 이수정 2024. 5.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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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오른쪽 두번째)이 19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붉어진 해외직구 규제 논란과 관련해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정부가 KC인증(통합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해 해외 직접구매(직구) 금지를 추진하다 번복하면서, C커머스(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대한 국내 유통산업 대응책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유통 산업계에선 국경없는 커머스 시대에 산업 경쟁력이나 해외직구의 소비자 편익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시효가 지난 대형마트 규제로 소비자 선택권과 산업 성장을 모두 놓친 것처럼,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일 대통령실은 정부의 ‘KC 미인증 해외직구 차단’ 논란에 대해 “국민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저렴한 제품 구매에 애쓰는 국민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 못한 부분에 대해 송구하다”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지난 16일 정부가 KC인증이 없는 어린이·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의 직구를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자 선택권을 정부가 무시한다는 불만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해외직구 구매액은 6조7567억원으로 2019년(3조6360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30대 주부 이모씨는 “유아용품 살 때 백화점은 쇼룸처럼 이용하고 더 싼 가격에 해외직구를 할 때가 많다”며 “소비에 국경이 사라진지는 오래”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같은 물건이어도 국내에서 수입해 판매하면 가격이 2~3배 뛰는 유통 구조는 왜 들여다보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해외직구가 문제가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마진이 많이 붙으면서 가격이 크게 뛰는 것이 문제”라며 “중국 직구를 해본 소비자들이 ‘그동안 국내 유통업체들이 마진을 이렇게 많이 붙였었구나’ 하는 소비자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소규모 수입상들은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오면 국내에서 인증을 받아야 하고, 유통 채널에 수수료도 줘야 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 직구는 소량 판매가 대부분이라 애초에 국내 유통상이 국내에 싸게 들여오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총장은 “시장 경쟁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부풀려진 가격과 안전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KC인증의 비용 면이나 편의성을 개선해 정식 인증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안전성 강화와 유통구조 개선 등 단계적 해법을 마련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산업 육성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중소 제조·유통업체가 해외에 진출할 때 받을 규제에 대한 고민도 정부는 해야 한다”며 “해외 진출, 리테일 테크 도입 등 유통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종합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유통 산업의 지형이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을 넘어, 중국의 온라인 업체들이 한국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만큼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부터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휴일 지정, 새벽 배송 금지 등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현재 21대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이대로라면 폐기될 처지다.

해당 법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2012년 제정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 유통 산업의 핵심 축인 대형마트들의 시장 경쟁력을 퇴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5년 새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 점포 수는 각각 11개, 10개, 14개 줄어들었다. 정부가 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 등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진전이 없었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이를 재발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업계는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마트업계 관계자는 “이번 KC인증 사태에서 보듯이 무조건 국경을 막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라며 “국내 기업들이 체력을 키울 수 있게 먼저 필요한 조치를 하면서 외국 기업과 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마트 규제도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당시 정치적 명분에 소비자 선택권이 밀린 사례”라며 “유통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면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성급하게 중국발 직구를 규제하려다 보니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다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며 “유통산업의 규제와 육성정책 전반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이수정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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