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허미미, 30년만에 유도 세계선수권 金 따냈다
재일동포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2·경북체육회·세계랭킹 6위)가 세계랭킹 1, 2위를 연파하고 한국 여자 유도에 30년 만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안겼다.
허미미는 21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2024 세계선수권 여자 57㎏급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인 크리스타 데구치(29·캐나다)를 상대로 12분19초간의 처절한 골든스코어(연장전) 혈투 끝에 반칙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유도 경기 정규시간은 4분이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10분 이상의 장기전은 보기 드물다. 연장전은 먼저 포인트를 따내는 선수가 승리하는 서든데스 방식이다. 허미미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대회 준결승에선 세계 2위 제시카 클림카이트(28·캐나다)를 절반승으로 물리쳤다.
대한유도회에 따르면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1995년 대회 정성숙(당시 여자 61㎏급)과 조민선(당시 여자 66㎏급) 이후 무려 30년 만이다. 남녀를 통틀어도 2018년 세계선수권 조구함(남자 100㎏급)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세계선수권 7월 열리는 파리올림픽의 전초전 격이다. 일본을 제외한 각국의 1진 선수들이 총출동해 실력을 겨뤘다. 이번 우승으로 허미미는 세계 2위까지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허미미의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다. 조부모는 모두 한국 출신이다. 이중국적자였던 허미미는 지난해 12월 21세 생일을 맞아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현재 일본 명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1857~ 1920년)의 후손이기도 하다. 경북체육회 김정훈 감독이 허미미의 할아버지가 허석 선생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허미미는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을 키웠다. 전통적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자는 그다음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조민선과 정성숙은 세계선수권 우승 이듬해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구함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유도는 애틀랜타올림픽(조민선) 이후 28년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남자 유도 역시 2012 런던올림픽 당시 김재범·송대남 이후 금메달이 없다. 허미미는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유도의 부활을 이끌 간판 스타다.
허미미는 침체기에 빠진 한국 유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스다. 그가 세계 정상에 서기까진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 유도의 특급 유망주였던 그가 한국을 땅을 밟은 건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손녀가 꼭 한국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의 뜻에 따라 허미미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그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그는 이듬해인 2022년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2년여 동안 이번 세계선수권을 포함 각종 국제대회에서 8차례 우승하며 한국 여자유도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김미정(53) 여자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번 우승으로 (허)미미의 국제 무대 위상이 높아져 올림픽에서 상대에게 큰 위압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미미도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면 라이벌의 견제가 심해져서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 이 기세를 몰아 열심히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미정은 감독은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유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72㎏급)를 일군 유도 레전드다. 그 역시 올림픽 전년도에 열린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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