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성장통을 앓는 청춘들에게

이명희 2024. 5. 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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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청년의 때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년들 안타까워

캄캄한 절망 터널 지날 때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업고 가시밭길
건네주고 있는 것
고난이 축복임을 믿어야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1929년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민태원은 ‘청춘예찬’에서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 청춘이라고 노래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2010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통해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어려워진 n포 세대라 불리는 이 시대 청년들을 위로했다.

눈이 부시는 젊음이다. 창틀에 부서지는 햇살만큼 싱그럽고 찬란한 때다. 이렇게 빛나는 20대에 암흑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있다. 어느 죽음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된 충북 제천의 스물일곱 살 자립준비청년의 자살은 너무 가슴 아프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만 18세에 세상에 나온 그녀는 보육원을 떠난 지 8년 만인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난 이제 여기까지인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워. 잘 살아.” 그녀가 전화로 지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정착지원금과 후원금을 합해 달랑 2000만원 손에 쥐고 세상에 내쳐진 그녀는 고깃집 등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며 전문대도 졸업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씩씩하게 두 발을 딛고 세상에서 버티려 했지만 무관심과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에 더한 절망감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터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다 보니 청소년기와 청년 때의 고뇌와 좌절도 성장통이었음을 깨닫는다. 염세주의 철학자들에 빠져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의 방황, 염세주의 작가들에 대한 동경, 다윈의 진화론을 어설픈 핑곗거리로 이렇게 힘들어 절망하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던 젊은 날 반항도 내 삶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 선택지 없는 막다른 길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청년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막막했을지 가늠조차 못 하겠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절망이 짓누르는 시대, 죽으면 이 고통도, 이 외로움도 끝일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각박해지고 물질이 최우선이 돼 버린 세상에서 말뿐 아니라 실제 교회가 희망이 될 수는 없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 28) 절망 속에 빠졌다가, 자살을 생각하다 십자가 불빛 따라 들어간 교회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살아갈 용기를 냈다는 이들이 실제로 많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전부가 아니며 지나고 나니 ‘고난이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자주 만난다. 시간이 지나면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때가 온다. 좌절하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의 더 큰 상급을 위해 이 세상의 고난을 함께 견디자고 손 내밀어줘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매년 전국 청소년 성령 콘퍼런스를 열며 20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있는 신길교회 이기용 목사는 최근 ‘고난을 넘다-쓴 물 인생이 단 물 인생으로’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고백했다. 세 살 때 의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조부모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렸을 때는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난방이 안 돼 추위에 떨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6일 동안 굶으면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고난도 유익이 되게 하시고(시 119:71),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닥친다. 그러나 깜깜한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업고 그 가시밭길을 건네주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연단과 시험 뒤에는 하나님의 더 큰 축복과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한 생명이라도 더 주님 앞으로 이끌고 그런 확신과 믿음을 주는 게 교회가 할 일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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