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내겐 너무 어려운 나라

이영희 2024. 5. 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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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도쿄특파원

얼마 전 일본의 한 기관에 취재 신청을 했다가 ‘열이 확 오르는’ 답 메일을 받았다. 때는 화요일, “이러저러한 일로 취재를 하고 싶은데, 급하긴 하지만 혹시 이번 주 내 방문이 가능하겠느냐”했더니 표현은 한없이 예의 바른, 하지만 해석컨데 이런 내용의 답이 돌아왔다. “최소 10일에서 2주 이전 취재 신청을 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지 정식의뢰서도 보내라. 너희들(한국 언론)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느냐.” 잠시 멍해졌다 다시 메일을 썼다. “급작스러운 요청에 대해선 사과한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 대한 언급은 과도한 것 같다.” 그러자 돌아온 긴 답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허나 역시 취재엔 응하지 못하겠다.”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일본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결산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에서 일한 3년 반의 시간은 이런 종류의 ‘벽’에 계속 부딪히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빨리 결정되지 않는, 느리디느린 속도에는 적응할 수밖에 없다 치자. 지극히 예의를 갖춘 듯한 말 속에 ‘칼’이 들어있고, ‘이건 아니잖아’ 항변하면 ‘자 문구를 꼼꼼히 봐라. 네가 오해한 거다’라고 한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인정하지 않고 정해진 대사만 반복한다. 성미 급한 외국인은 그때마다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 그게 그거잖아!”

특파원 생활을 마지막까지 바쁘게 만든 ‘라인야후’ 사태를 보면서도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총무성이 행정지도에 적은 ‘자본 관계 재검토’는 ‘네이버의 지분을 사들여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을 의미함을 일본 정부도, 라인야후도, 일반인도 다 아는데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 무슨 뜻인지 물으면 “알아서 해석해야지”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도 똑같은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2019년 일본은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반도체 분야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역사 문제에 경제 보복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일자 “징용문제와 수출관리는 별개”라는, 발언자조차 믿지 않는 주장을 끝까지 이어갔다.

특파원으로 일하는 동안 한·일 관계는 ‘개선’되는 듯 보였다. 도쿄 길목을 돌 때마다 들려오는 한국어는 변화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 변화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 것이 ‘라인야후’ 사태다. 일본 외교 관련 인사들에게 “한국은 한·일 관계를 위해 이것저것 하는데 왜 일본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느냐”고 물으면 “(한국) 정권이 바뀌면 또 달라질 게 분명하니 움직이기 곤란하다”고 한다. 한국은 꿈쩍 않는 일본이, 일본은 자꾸 달라지는 한국이 상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이웃과 평화롭게 동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거대한 숙제를 안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영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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