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 인도의 시대 [김선걸 칼럼]
올해 CES(국제전자박람회)에는 유통·화장품 공룡 기업인 월마트와 로레알이 처음 참여했다. AI에 뒤처지면 도태한다는 위기감이 이런 업종마저 전자박람회로 이끈 것이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의 기조연설에 사이아 나델라 MS CEO가 깜짝 등장했다. 이후 8명 정도의 월마트 임원이 발표에 나섰는데 맥밀런 대표를 제외하고 쿠마르 최고기술책임자(CTO), 라자세카르 수석 부사장 등 나머지가 모두 인도계였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월마트가 인도의 IT 역량을 세계에 자랑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금 이 시대는 ‘특이점(Singularity)’ 언저리다. 특이점의 사전적 해석은 ‘기존 원리와 해석이 적용되지 않는 변곡점’이라는 뜻이지만 이제는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대변혁의 기점’을 일컫곤 한다. 구석기 시대 이후 지구를 지배해온 인류의 두뇌를 대체할 새 지능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해 인간의 뇌에 칩을 삽입하고 궁극적으로 AI와 결합하는 선택권을 갖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주 깜짝 발표된 오픈AI의 챗GPT4o는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AI 집사인 ‘자비스’처럼 영상, 소리를 인식한다. 그 며칠 뒤 경쟁자인 구글은 고장 난 전자제품을 찍으면 점검 매뉴얼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AI를 내놨다. 내일은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이런 대변혁의 선봉에는 인도 사람들이 있다. 글로벌 기업 CEO는 인도계가 허다하다. 빅테크의 ‘빅2’인 MS(사이아 나델라)와 구글(순다르 피차이)의 CEO를 차지했고, IBM(아르빈드 크리슈나)과 어도비(샨타누 나라옌)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14억명의 인구 대국에 평균 연령 28.3세의 젊은 나라다. 영어 가능자만 2억명이다. IIT(인도공대)로 대표되는 대학에서 인재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속해온 핵 보유국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실용주의 리더인 모디 총리도 잠재력의 한 요소다.
20년 전 미국서 MBA를 할 때 인도 학생들이 많았다. 특이한 건 그중 절반은 학부 때 이공계 전공자였다. 이른바, 공학을 백그라운드로 하고 타 학문을 섭렵한 ‘알파인재(Alpha Talent)’였다. 결국 지금 인도계 기업 경영자가 많은 건 오래전부터 ‘예정된 미래’였다.
그런데 ‘수학과 과학의 소양을 갖춘 인재’라는 콘셉트는 인도만의 것은 아니다. 한 세대 전에는 한국의 콘셉트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과학기술입국’을 기치로 인재들을 유학 보내고, 197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했다. ‘한강의 기적’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공이 컸다. 그 DNA는 지속되고 있다. 수학 올림피아드 같은 경연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늘 수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최고의 인재들이 과학 기술의 현장에서 한발 물러선 느낌이다.
지난주 오픈AI와 구글이 경쟁적으로 AI 혁명을 발표하는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뉴스는 여전한 의정 갈등이었다. 이공계의 ‘의대 쏠림’ 현상으로 초등학교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나라. 17년간 정체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에 맞서 전공의들이 사직한 지 90일을 목전에 뒀다. 의학도 물론 중요한 분야다. 그러나 의사만 꿈꾸게 하는 사회의 보상 시스템은 모두에게 독이다.
한국은 ‘인재의 나라’다. 그런데 인구도 줄어들고 직업 쏠림까지 강해졌다.
우리의 ‘예정된 미래’는 과학·공학 인재들에게 달렸다. 이들에게 큰 보상이 가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0호 (2024.05.22~2024.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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