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미래…천비디아? 횡보디아?
“지금 사야 할까, 추가 하락을 기다려야 할까.”
AI 반도체 대표 주자 엔비디아를 보유하지 않은 투자자라면 고민이 깊어질 시점이다. AI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단기간 급격히 오른 만큼 추가 조정을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다. 최근 엔비디아 주가가 주춤하자 증권가에서는 AI 강세장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970달러 돌파 후 숨 고르기
그도 그럴 것이 엔비디아는 달릴 만큼 달렸다. 2022년 100달러 수준이었던 주가는 지난해 파죽지세로 올랐다. 지난 3월 970달러를 돌파하며 ‘천비디아’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하지만 1000달러를 찍지 못하고 급락하더니 지난 4월에는 800달러 선마저 내줬다.
지난 4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과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예상에 못 미치는 부진한 실적을 낸 점이 악영향을 끼쳤다. 최근 영국계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이 시장 전망을 밑도는 연간 매출 전망을 내놓으며 AI 특수 기대감이 다시 흔들렸다. ARM은 5월 8일 장 마감 후 애널리스트 전망치를 웃도는 올 1~3월 분기 실적과 올 4~6월 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발표했다. 하지만 회계연도 2025년(올 4월~내년 3월) 전체 매출액 가이던스 중앙값(39억5000만달러)이 애널리스트 전망치에 5000만달러 미달했다는 이유로 시간 외 거래에서 9% 떨어졌다.
그러자 월가에서는 조정론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바한 재니지안 그리니치웰스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는 “매출 대비로 따지면 엔비디아 주가가 너무 비싸다”며 하락 가능성을 언급했다. 폴 갬블스 MBMG패밀리오피스그룹 경영파트너는 “딱히 호재가 없는 가운데 주가는 50~90%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극단적인 주장까지 했다.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AI가 단기적으로 고평가됐다”는 언급과 함께 엔비디아 주식을 대거 매각했다는 소식도 투자 심리를 냉각시켰다.
김지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빅테크 기업 실적 발표를 전후해 AI의 추세적인 강세장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며 “반도체주 밸류에이션 부담이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3월 코스피 2750선 돌파를 이끈 마이크론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 확대 보도와 그에 따른 관련 종목의 신고가 경신,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보조금 수혜 기대감이었다”며 “전고점 돌파를 위해서는 AI 수요와 관련된 강한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 주가가 하락하며 다른 AI 반도체 기업 주가 역시 대체로 부진했다. 3월 중순부터 한 달간 1% 상승하며 코스피 AI 반도체 랠리를 주도했던 SK하이닉스도 최근 한 달간 5% 가까이 하락했다. ‘8만전자’ 복귀로 환호를 자아냈던 삼성전자는 4월 중순 이후 7만원 아래로 내려간 뒤 7만8000~7만9000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KODEX AI반도체
핵심장비’ ‘ACE AI반도체포커스’ 등 대표적인 AI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 상승세도 멈췄다.
HSBC는 1350달러로 상향
그러나 최근 상승세는 조정 뒤 반등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엔비디아 주가는 4월 19일 762달러를 바닥으로 상승세를 탔다. 5월 14일 기준 주가는 913달러다. 지난 3월 8일 기록한 고점(974달러)보다 다소 낮지만 그래도 ‘천비디아’를 기대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호의적이다. 팩트셋 데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 보고서를 내는 60명 애널리스트 중 53명(88%)은 매수(비중 확대와 시장 수익률 상회 등 포함) 의견을 제시한다. 약세 의견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1009달러에 달한다.
펀드매니저 의견은 애널리스트보다는 보수적이지만 역시 매수에 무게를 둔다. 알피니티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관리자인 트렌트 매스터스는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낙관적인 의견을 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엔비디아 초기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지난해 3월 390달러로 상승했을 때 매수했다”며 “이미 너무 많이 오른 주식을 매수하는 것은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 때문에, 당시 매수 결정은 지난 10년 동안 했던 일 중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어 “엔비디아의 주당순이익이 4배 증가한 것을 봤다”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경쟁력은 강력한 수요와 GPU(그래픽처리장치) 분야에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 지속 가능한 수익 등이다.
HSBC도 최근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1350달러로 높였다. 향후 50% 가까이 상승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 근거로 강력한 가격 결정력을 꼽았다.
고평가 논란에도 선을 긋는 분위기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고평가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익률이 좋아서다. CNBC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향후 순이익 전망치 기준 선행 PER은 37배다. 이는 엔비디아의 5년 평균 PER 밴드(40배)보다 낮다. 반도체 경쟁사 AMD는 44배, ARM은 89배에 달한다. 그만큼 엔비디아 이익률이 좋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 촉각
또다시 블록버스터급 실적 나올까
물론 추가 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윈썹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관리자인 아담 쿤스는 “엔비디아가 AI 칩 부문에서 사실상 독점하는 훌륭한 기업”이라면서도 보유 비중을 줄이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가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재평가한 이후 보유 지분을 다시 늘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기준은 향후 5년간 연간 매출 성장률 50% 이상이다.
증권가는 5월 22일(미국 현지 시간)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주목한다.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만이 AI 파티를 이어가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2~4월 분기 시장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수준의 실적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폭등했다. 그러나 5~7월 분기와 8~10월 분기 실적은 시장의 기대치를 큰 폭으로 웃돌았음에도 주가가 크게 오르지 못하고 횡보했다. 이 때문에 당시 엔비디아는 ‘횡보디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투자자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또다시 상상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실적을 발표해 주가가 급등하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지난해 5~7월 분기나 8~10월 분기 실적 발표 때처럼 주가가 현상 유지라도 해주기를 원한다. 다만 ARM의 사례를 봤을 때 엔비디아가 애널리스트 전망치를 소폭 웃도는 수준의 실적이나 가이던스를 발표해서는 주가가 현상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0호 (2024.05.22~2024.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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