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체험학습에서 본 벌레에 빠져... 주부에서 곤충 박사로

성원영 2024. 5.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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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곤충의 집짓기> 출간한 정부희 곤충 박사, '한국의 파브르'로 탈피하기까지

[성원영 기자]

 정부희 박사의 신작 <곤충의 집짓기>
ⓒ 보리
  
지난 11일, '팅커벨'로 불리는 동양하루살이가 경의중앙선 열차 안에 출몰했다.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동양하루살이 수십 마리가 열차 내부 벽면에 온통 붙어있다. 누리꾼들은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 또한 비슷한 뉘앙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동양하루살이는 '해충'이 아니다. 독도 없고 바이러스도 옮기지 않는다. 2급수 이상의 깨끗한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이들의 출현은 한강의 수질이 좋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떼로 몰려든 팅커벨은 '혐오감'을 주며 민원의 대상이 된다. 특히, 5~6월과 8~9월에 활동하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퇴치 민원이 많아진다.

우리는 왜 벌레가 사라지길 바랄까. 벌레도 분명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인데 말이다. 20여 년을 벌레 연구에 바친 정부희 박사는 이러한 사회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출신의 정 박사는 아이 체험학습에 따라갔다가 벌레와 사랑에 빠진 전업주부 엄마였다. 이후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박사가 된 후에는 '버섯살이 곤충' 연구를 본격화했다. 현재 양평 곤충연구소를 운영하며 한양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 <곤충의 밥상> <곤충의 짝짓기>에 이어 지난 4월 <곤충의 집짓기>를 출간했다.

정 박사는 평소에도 가슴에 곤충 브로치를 하는 영락없는 '벌레 덕후'다. 도대체 벌레의 매력이 뭐길래? 사람들이 징그러워하는 '벌레'와 동고동락하는 삶은 어떤지 정부희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자연을 누비는 곤충학자
 
 제주도 곶자왈에서 사진 촬영 중인 정부희 박사. 아들 승진배씨가 촬영한 사진이다.
ⓒ 정부희
 
- 요즘 어떤 곤충을 주로 연구하시나요?
"제 주전공인 '버섯살이 벌레' 채집을 위해 최근 제주도 곶자왈에 다녀왔습니다. 곶자왈은 버섯살이 곤충의 산실이거든요. 제주도가 따듯하고 비가 많이 와서 남방 종들이 많아요. 열대나 아열대성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친구들이 많이 있죠. 워낙 대자연에 사람도 없는 곳이라, 곤충학도인 둘째 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 아들도 곤충을 연구하나요?
"네, 제가 버섯을 먹고 사는 곤충을 연구한다면, 아들은 똥이나 시체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풍뎅이붙이'를 연구해요. 곶자왈에 가서 아들이 소똥을 뒤질 때 저는 그 옆에서 촬영하고, 제가 버섯살이 곤충을 찾을 때 아들은 버섯 벌레의 포식자를 찾았습니다."

- 채집은 어떻게 하나요?
"보통 살아있는 경우를 채집해요. 필요할 땐 벌레의 날아다니는 습성을 이용해 트랩을 만들기도 합니다. 요즘은 DNA 실험을 하니까 그걸 위해서 발톱을 소량 체취해요. 채집한 어른벌레의 경우, 수명이 열흘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죽으면 표본으로 제작해요. 그 표본을 가지고 관찰하고 논문을 쓰죠."

- 그렇다면 야행성 벌레는 어떻게 관찰하는지 궁금해요.
"곤충학자들끼리 두세 명 정도 같이 가서 '등화 채집'을 합니다. 불을 켜 놓고 불에 날아오는 야행성 곤충을 보는 거죠. 장비가 필요해서 최소한 두 명은 필요합니다. 메뚜기류, 사마귀류, 나방류 등의 야간 곤충은 6월 여름부터 9월까지 많이 보여요."

-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벌레 서식지는 어디인가요?
"제주도는 남방 종, 강원도는 북방 종의 대표적인 서식지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돼 예전처럼 구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요. 다만, 강원도는 평창 올림픽을 기점으로 자연이 많이 손상됐어요. 올림픽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은 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벌레들이 남아있는 곳은 사람들이 안 다니는 지역이에요. 강원도 오대산, 속초 설악산 울산바위 가는 길엔 곤충이 없어요. 사실 제주도도 개발이 많이 됐는데, 곶자왈이 있어 다행이에요."
     
정부희 박사가 벌레를 사랑하는 이유
 
  으름밤나방 애벌레. 정부희 박사가 직접 색연필로 그린 그림이다.
ⓒ 정부희
- 벌레에 빠진 계기가 궁금해요.
"아들들이 어렸을 적 체험학습으로 함께 자연을 돌아다녔어요. 당시엔 야생화를 보는 것이 취미였는데, 언젠가부터 벌레 한 마리가 눈에 밟혔어요. 해마다 같은 시기 똑같은 다래나무에 팥알만한 벌레 한 마리가 있는 거예요. 가슴이 노랗고 날개는 초록빛인 것이 꼭 노랑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은 듯했죠.

햇빛에 비치자, 벌레의 몸이 보석 가루를 잘게 뿌린 것처럼 반짝였어요. 어쩜 그리 예쁠 수 있나. 그때만 해도 그 벌레의 이름이 '노랑가슴녹색잎벌레'라는 걸 알지 못했죠. '넌 도대체 누구니?' 그 물음 하나를 안고 곤충 박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 신작 <곤충의 집짓기>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벌레가 있나요?
"거위벌레를 뽑고 싶어요. 사람은 도구를 이용해 집을 짓지만 벌레는 도구를 쓸 수 없죠. 대신 턱과 다리를 이용해요. 거위벌레는 자기 몸의 몇십 배 되는 이파리를 오리고 접어요. 인간으로 치면 거대한 운동장에서 혼자 땅을 파는 것과 같죠. 집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걸려요. 꾀도 부리지 않고 정해진 루틴을 따르면서요.

왜 그럴까요. 벌레에게 집이란 새끼를 보호하고 키워내는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 건 온전히 어미벌레의 몫이에요.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그 힘든 노동을 하는 거죠. 옆에서 보면 '어떻게 저러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벌레와 공생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는 어렵겠지만 시골이라면 방법이 있어요.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잖아요. 전원주택이나 공공기관 연구소를 지을 때 흙담을 짓는 겁니다. 환경적인 의미가 있죠. 흙담은 벌레들에게 아주 좋은 집터가 되어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변에 벌레들이 날아다닌다고 해서 그 곤충을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거죠."

벌레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고려엉겅퀴 꽃에 찾아온 호박벌 수컷
ⓒ 보리
 
- <벌레의 집짓기>를 보면 "10년이 지난 지금은 벌들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라는 언급이 있어요.
"벌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벌레 개체 수가 줄었어요. 놀라운 건 이미 20년 전부터 그랬다는 겁니다. 제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대학원생들에게 그래요. '연구할 곤충이 없는데 너네 어떡하니.' 샘플이 있어야 연구를 하는데, 그 샘플이 되어줄 벌레 자체가 많이 사리진 거죠.

제 스승님인 김진일 곤충학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행운아야. 내가 활동했던 80년대 초만 해도 바다의 사구를 10분만 조사하면 곤충이 쏟아져나왔어. 그런데, 요즘은 곤충이 없다. 새로 시작하는 곤충학도들이 참 힘들겠어.'"

- 상황이 많이 심각하네요. 어떻게 해야 벌레를 지킬 수 있을까요?
"도시의 경우엔 살충제 살포를 지양하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게 있습니다. 나무에 감는 끈끈이 트랩이에요. 벌레들은 거의 다 날아다니기 때문에 트랩에 걸리기 쉬워요. 거기 붙은 벌레들은 한 번에 죽지도 못해요. 버둥거리다 날개가 떨어지고 다리가 떨어져요. 그래도 생명 스케줄이 다할 때까지 거기 붙은 채 죽어가는 거예요.

저는 이걸 '최악의 참사'라고 생각해요. 이건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아요. 아이들이 죽어가는 생명을 보며 생명 경시를 느낄 수 있어요. 벌레와 공존해야 하는데, 단지 징그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잔인하게 죽는 건 말이 안 되죠."
 
 박쥐나무 잎을 먹는 왕갈고리나방애벌레. 정부희 박사가 제주도에서 채집 후 색연필로 그린 그림이다.
ⓒ 정부희
  
- 왜 사람들은 벌레를 징그럽다고 여길까요? 
"이건 나의 짐작입니다. 아무래도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린아이들은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식물보다 벌레에 더 흥미를 느끼죠. 하지만 자라면서 어른들이 눈앞에서 벌레를 잡거나, 친구들이 벌레를 보고 놀라는 등의 모습을 보고 벌레에 대한 호불호가 동화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인식의 개선을 위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벌레에 대한 호불호를 굳이 주입하지 않아야 해요. '개미가 지나가면 개미가 지나가는구나'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아이들도 친근하게 여길 수 있어요.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 쉽게 죽이는 모습도 지양해야겠죠.

물론 현실적으로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곤충은 인류와 공존할 수밖에 없어요. 곤충이 없으면 우리가 먹는 작물이 나올 수 없어요. 결국 식물의 번성을 책임지는 건 곤충이니까요. 벌레가 혐오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조금씩이라도 가지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희 박사는 <곤충의 집짓기>를 집필하며 느꼈던 바를 이렇게 전했다.

"이번 책을 집필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어미 쌍살벌이 한밤중에 둥지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에요. 마치 어미 새처럼 알이 따듯하게 부화가 잘되도록 끌어안고 있는 거죠.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벌레의 삶을 알게 된다면 감정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제가 곤충기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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