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추락하는 나라', 문재인이 그렇게 느낀 이유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2023년 9월 10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의 정상회의장인 바라트 만다팜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한일 역사문제를 희생시킨 그는 2023년 10월 29일 미국 케네디재단이 주는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기시다 총리와 함께 수상했다. 한국 시각으로 하면 이태원 참사 1주기인 그날, 그는 "세계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에 기여해야 되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라며 "앞으로 더욱 헌신적인 용기가 필요합니다"라는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지난 4월 24일에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을 희생시키는 윤 대통령의 조치는 이처럼 미국과 일본의 격찬을 받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는 국내에서 매우 나빠져 있다. 작년 10월 11일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올해 4·10 총선이 잘 웅변한다. 그는 손실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외부 동맹보다 국내 기반을 경시하는 지도자가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얻은 사례는 많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18 제44주년인 18일에 펴낸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그런 윤 대통령을 '일본에 대해 일방적으로 백기를 들었다'는 말로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관과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출간된 이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은 일방이 아닌 쌍방이 양보하는 해법을 만들 수도 있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다면 서로 양보하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봐요. 또 어떤 해법이든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죠. 그런데 현 정부는 피해자들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백기를 들어버렸어요."
물론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반성과 배상이 일본에서 나오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윤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합의만큼도 못한 결과에 그쳤다.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형태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일방적인 백기 투항'이라는 평가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
▲ <변방에서 중심으로> |
ⓒ 김영사 |
문 전 대통령은 일본이 한일관계 악화의 발단이라고 지목하는 2018년 대법원판결이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전범기업에 손해배상을 명령한 그 판결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는 최고의 고권(高權)을 갖는 거예요. 대통령도 행정부도 모두 거기에 따라야 되는 거죠. 대법원 판결과 다른 논리를 세우면서 일본 쪽 주장을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거예요."
문 전 대통령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윤 대통령은 가능하게 했다. 이것이 윤 대통령의 패인이라는 게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징용 피해는 가해자의 반성 및 사과와 배상으로 끝나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표시한다.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에 관한 사안이라는 이유에서 그는 이 문제를 "사인 간의 문제"로 판단한다. 개인 간의 문제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었던 이 사안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것은 일본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이 대담에서 나타난 공감대다, 다음과 같은 최종건 교수의 발언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 이후에 해당 피고기업들의 반응은 협의하자는 것이었는데, 우리에게 들어온 도쿄의 시그널은 첫째로 기업의 주주들이 반대한다, 둘째로 이번 건이 끝이 아니라 계속 소송이 이어져서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이 우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송 당사자인 전범기업보다도 더 완강했던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 9개월 뒤인 2019년 7월 1일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 카드를 내놓았다. 이 시기 일본 정부의 태도는 매우 감정적이었다. 그해 6월 29일 오사카에서 개막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홀대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최종건 교수는 "그때 아베 총리는 여타 19개국(18개국의 오자인 듯) 정상과 다 정상회담을 했는데 유독 대통령님과는 회담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럴 땐 좀 어떠셨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문 전 대통령은 "정말로 속 좁은 모습을 보여주었죠"라며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물론 섭섭하고 불쾌했어요. 한편으로는 일본이 정말 도량이 없는 나라가 되어가는구나 생각했죠. 이제는 일본이 상승하는 나라가 아니라 추락하는 나라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금도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자기들 나라로 찾아온 손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속 좁은, 외교적인 협량함을 보였던 거죠."
역사문제에 대해 엉뚱하게도 경제문제로 보복하는 그 같은 일본에 대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문 전 대통령은 회고한다.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도 현실적으로 지소미아밖에 없었어요"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일본이 그처럼 험악하게 나왔지만 좀 더 여유 있게 대처했다면 일본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 전 대통령의 시각이다. 그런 기회를 윤 대통령이 놓쳤다는 것이 대담에서 나타난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이다.
▲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 |
ⓒ 연합뉴스 |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 측에서도 일본 측 태도가 문제 있다고 보고 그것이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을 상당히 해친다고 판단해 미국이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였어요. 그때 미국이 제시한 해법은 공동기금에 미국도 참여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좀 더 좋은 모양이 되고 피해자들을 설득하기가 수월해지죠. 우리도 체면이 더 서고, 일본도 그렇고요."
한미일 공동기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는 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이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면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은 이런 상황에 기초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너무 서둘러 그런 기회를 놓쳤을 뿐 아니라,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 해악까지 빚어졌다는 것이 대담에서 형성된 공감대다. 가해자가 아닌 제3자가 주는 돈을 받고 끝내라고 종용한 것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건 교수가 "결국은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분들, 피고기업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해 소송까지 한 원고분들을 돈만 받으면 되는 사람들로 인식한 것은 아닌지, 사실상 현 정부가 2차 가해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라고 말하자, 문 전 대통령은 "대위변제금을 수령하지 않는 분들에 대해서는 그런 지적도 할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대담에서 나타나듯이 문 전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악화된 주 원인이 일본 정부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으로 인해 일본의 태도가 바뀔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축소시킨 것이 윤석열 정부의 조급증이라는 것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전 대통령은 윤 정권이 제3자 변제를 강행하는 지금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다가는 결국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행정부가 제3자 변제금을 받으라고 촉구하는 것은 "당연히 대법원 판결에 반하고 삼권분립에 위배되죠"라고 한 뒤 이렇게 경고한다.
"대위변제가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명백해요. 제3자 대위변제는 채권자가 거부할 경우에는 하지 못하는 것인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이미 밝혔기 때문에 그건 안 되는 거죠. 벌써 법원이 대위변제 공탁을 거부하고 이의신청도 기각하지 않았습니까?
법원 판결로 확정되겠지만 대위변제가 안 되는 것으로 확정되면 그 후에는 어떤 해법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면 강제집행은 강제집행대로 진행되는 것이거든요. 그럴 경우 이 정부의 해법이 결국 파탄을 맞이하는 거여서 그것도 걱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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