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균이 왜 국가핵심 ‘기술’? 산자부의 수상한 규제

전종보 기자 2024. 5. 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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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보툴리눔 톡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관리 중인 것을 두고 제약업계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핵심기술에 보툴리눔 독소 생산기술뿐 아니라 독소 균주까지도 포함돼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과도한 규제 탓에 우리 기업만 수출 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보툴리눔 톡신 생산기술 이어 균주까지 핵심기술로 지정돼
정부는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됐을 때 국가 안전보장,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한 국가핵심기술은 수출 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며, 지원을 받지 않은 경우엔 사전 신고 후 사후 관리가 이뤄진다. 해당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산자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처벌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기기 등 총 75개다. 흔히 ‘보톡스’라고 불리는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 기술(생명공학 분야) 또한 2010년 해당 기술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6년 후엔 추가 고시를 통해 보툴리눔 독소를 생산하는 균주까지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됐다. 산자부 관계자는 “추가 고시 이전에도 균주 또한 기술의 일부고 생산기술과 균주를 분리해서 심사할 수 없다고 판단해 함께 심사해왔다”며 “이 부분에 대해 기업으로부터 여러 차례 문의가 있었고, 이후 균주가 포함된다는 내용을 명확히 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 제약업계 “비현실적 규제” 반발
보툴리눔 톡신 생산 기업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생산 기술의 경우 이미 1950년대부터 논문, 특허를 통해 공정이 공개돼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생산·판매하고 있는 데다, 그 기술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할 만큼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을 필요로 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톡신 제제 생산기술은 노하우가 논문 등의 형태로 죄다 공개돼 있다”며 “규제는 비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추가 고시를 통해 균주를 국가핵심기술에 포함시킨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기본적으로 균주는 살아있는 미생물로, 국가핵심기술로 정의되는 ‘방법’이나 기술상의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확대되면서 해외기관을 통해 균주를 사고파는 사례가 빈번한 점을 고려했을 때도 균주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핵심기술로 보긴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총 75개 국가핵심기술 중 보툴리눔 독소 생산기술만 ‘보툴리눔 독소 균주 포함’이라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절차상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절차 관행을 무시하고 너무 빨리 개정 고시를 했다는 게 제약업계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법 개정 한 두달 전에는 행정예고를 하는데, 보툴리눔 독소 생산기술이 최초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2010년 지식경제부고시와 “보툴리눔 독소 균주 포함”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모두 행정예고를 생략했다.

◇ 의견 전달했지만 안 받아들여져… 산자부 “하반기 논의 예정”
기업들이 이처럼 반발하는 이유는 전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1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인해 우리 기업만 해외사업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보툴리눔 톡신 생산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산자부로부터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이 보통 수개월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사업을 위해 제조 방법·공정까지 현지 규제당국의 요구에 모두 맞춘 상태에서 산자부 승인을 기다리는 데만 몇 달을 더 소요해야 하는 셈이다. 해당 기간 동안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손해는 모두 기업의 몫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적응증을 발굴하고 승인받을 때도 방법·공정 변경이 불가피하다”며 “우리 기업이 수개월에 걸쳐 승인받는 사이에 애브비, 입센, 멀츠와 같은 해외 기업들은 전세계로 사세를 확장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지속적으로 정부에 국가핵심기술 해제를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실제 지난해 말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 톡신 제제 생산기술과 균주를 국가핵심기술에서 제외해줄 것을 산자부에 요청했지만, 이후 열린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에서 톡신 관련 안건은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해 해당 안건이 전문위에 올라와서 기업 의견까지 들어봤지만, 결론적으로 균주를 독립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와서 유지한 것”이라며 “당시 다른 기업들 의견을 참고하고자 협회에 찬반 조사를 의뢰한 것이지,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공문 형태로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 의견을 무시한 게 아니다. 협회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며 “올 상반기 개정이 끝나면, 하반기에 기업 측에 공문을 보내 13개 분야 국가핵심기술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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