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띄운 노동법원 두고…"분쟁 절차 간소화" vs "비용∙시간 부담"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계의 오랜 염원인 노동전문법원 설치를 지시하면서 정부 추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두 대선 공약에 포함했던 사안인 만큼 야당도 호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잡한 노동 분쟁 해결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오히려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동분쟁 ‘최대 8심제’ 지적…독일 등 노동법원 운영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법원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노동분쟁 해결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 등 사실상 5심제로 운영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민사 소송까지 별도로 진행하게 되면 ‘최대 8심제’까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 분쟁은 장기화될수록 피해 근로자의 어려움도 커지는 만큼 노동계에선 절차를 간소화하면서도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노동법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직 법관들도 노동법원 설치에 긍정적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노동쟁송절차의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판사의 73.6%가 ‘노동법원 신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원화된 노동쟁송절차를 통일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해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고 ▶노동사건의 특수성에 따라 별도 전문법원에서 특수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해외에선 독일·프랑스·영국 등에서 노동법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1심 지방노동법원부터 3심 연방노동법원까지직업법관과 사용자·근로자위원 동수로 구성된 명예법관이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제’ 형태를 띄고 있다. 명예법관은 별도 법관으로서 경력을 요구하진 않고, 합의 절차에서도 직업법관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는다. 노동계에서도 이같은 참심제 형태의 노동법원을 한국에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노위 “3.4%만 행정소송…노동위서 신속 구제”
하지만 노동법원이 현행 노동위원회 제도와 비교해 권리 구제가 신속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노위에 따르면 노동위 초심 평균 처리 기간은 약 47일로, 재심사건에 대한 법원 행정소송 평균 처리 기간(488일)의 10분의1 이하였다. 또한 지난해 지노위 전체 사건 처리 건수(1만5665건)의 3.4%만이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나머지 96.6%는 노동위 단계에서 신속하게 해결됐다는 의미다. 중노위 관계자는 “사실상 5심제로 운영돼 근로자의 권리구제가 지연된다는 지적과 달리 노동위가 분쟁 조기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신속성 측면에선 노동위 사건 처리 속도가 법원 판결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법원과 달리 노동위 구제 절차는 무료라는 점에서 경제성과 접근성도 뛰어나다”며 “절차가 늘어진다는 이유에서라면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처럼 중노위에 법원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등 이미 정착된 노동위 제도를 잘 고쳐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재원 마련 어려움·위헌 우려도
비용도 문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1대 국회에서 야당이 발의한 노동법원 설치 법안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5개 고등법원과 8개 지방노동법원 등 13개 노동법원을 설치한다고 가정할 경우 2025년부터 5년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이 최소 118억원에서 최대 1조138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됐다.
해외와 같은 참심제 형태를 도입했을 때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과 다른 헌법 체계를 갖춘 한국에선 법관 자격이 없는 근로자·사용자 측 명예법관이 양형 결정에 관여할 경우 위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실질적인 구제 기능 강화할 수 있도록 논의”
이에 정부는 기존 노동위 제도의 취지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노동법원 제도가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논의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특정한 방식이나 형태를 상정하진 않았다”며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임금체불의 민형사 원스톱 기능’ 등 실질적인 구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법원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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