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오만가지 '맛집', 천막 농성장으로 오세요
[박은영 기자]
▲ 민물검정망둑 가슴지느러미가 마치 튤립나무 꽃처럼 보인다. |
ⓒ 오연주 |
세종보 농성천막을 방문한 이가 다가와서 자랑하듯 말했다. 합강습지 어류조사를 도우러 경주에서 왔단다. 시종일관한 그의 미소는 비단 멸종위기종 1급 물고기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봤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세종보에 물을 채우면 이곳에서 멸종될 물고기를 지키는 자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뜻으로도 읽혔다. 그는 천막 옆 웅덩이에서도 가슴지느러미가 튤립나무 꽃을 닮은 민물검정망둑을 발견했다며 네이처링에 기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농성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런 새로운 만남이 소중하고 고맙다.
물떼새를 조사하는 이, 물살이를 조사하는 이들이 멀리서도 여러명 보인다. 조사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종보 담수로 물만 가득한 강에서는 조사할 것도 없다. 획일화된 지형에서는 그곳에 살 수 있는 생물종도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검푸른 강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그 안에 들어 살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가까이 다가서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세종시 합강습지 미호강 보행교 모습 |
ⓒ 김병기 |
세종시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거주지 자연환경 만족도가 높은 곳이기도 했다. 지난 2023년 11월,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거주민들 대상으로 '2023년 생태계서비스 대국민 인식 및 만족도'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세종시 응답자의 74.3%가 거주지 주변 자연환경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세종시는 1인당 공원 면적(57.6㎡/인)이 광역지자체 중 가장 넓기도 하다. 세종 호수공원이나 금강수변공원 등 거주지 근처에 조성된 공원들이 많아 쉽게 자연환경에 들 수 있다. 주변 자연환경 만족도가 높은 만큼 주 1회 이상 자연에 든다는 응답률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45.7%에 달했다.
2018년 이후 수문이 개방되고 강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이후 세종시민들이 만족감을 느끼는 이런 생태계서비스들은 사실상 수문이 닫히면 전부 사라지게 된다. 강변에서 물수제비 뜨기도, 물떼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도, 자갈을 쌓을 수도 없다. 강과 함께 즐기고 느끼던 위로도 사라지게 된다. 수문을 닫으면 금강을 통해 받아온 생태계 서비스는 사라지는 것이다(관련기사: 세종시, 전국서 '거주지 자연환경' 만족도 가장 높아 https://omn.kr/26jl5).
▲ 세종보 재가동에 항의하는 활동가들 세종보 재가동 현장에 온 한화진 장관의 차를 막아선 활동가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지자체도 마찬가지고,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정권이 바뀌면 전에 하던 정책들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사라지고 바뀌게 된다. 담당자는 종종 바뀌지만 정책연속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고 시장이 바뀌면 그 큰 시청, 환경부 건물 안에서 단 한사람도 "잘못했다." 또는, 조직 안에서 "이래선 안되는 겁니다"라고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업무를 담당하는 1, 2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이 조용히 있다가,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공무원들의 생계를 위해 허리띠 졸라매면서 세금을 헌납하고 있다.
▲ 환경부에 항의서한 전달 중 환경부 앞에 찾아가 서한을 받아가라고 요구하며 버티자 환경부 직원이 나와서 항의서한을 받아가고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그런 환경부에 항의를 하려고 족히 300번은 전화한 것 같다. 하지만 환경부의 전화기는 항상 불통이었다. 항의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환경부에 직접 찾아가서 면담을 신청했지만, 그냥 면회실에 공문만 접수하고 가란다.
▲ 돌들이 선 금강 세종시민들이 강변에 놀러왔다가 세워둔 자갈돌 |
ⓒ 송영욱 |
"우와 저게 가능해?"
간밤에 누군가 돌탑을 세웠다. 세종보를 배경으로 강변의 돌 위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돌탑을 보고 있으면 우리들의 녹색천막처럼 위태롭다. 하지만 그 앞에 서서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는 물수제비 날리는 곳 옆에 위치한 이 자갈밭을 위태로운 평화를 즐길 수 있는 '물멍 장소'로 정하기로 했다.
▲ 강을 바라는 솟대 천막농성장 곁 새솟대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솟대 뒤로 멀리 세종보가 보인다. 저 수문을 닫으면 솟대도, 돌탑도, 자갈밭도, 모래사장도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은 새들은 이곳을 떠날테고 우리는 당분간은 강에 찾아와 이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발길이 뜸해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중 사람들은 자갈도, 모래도, 여울도 모른 채 원래 강이 이렇게 검고 적막한 것이구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울한 상념을 떨쳐버리려고 자갈밭을 걸었다. 바람이 분다. 강물이 흐른다. 수달과 물떼새들의 발자국이 곳곳에 찍혀있다. 알록달록한 자갈이 물속에서 여울진다.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를 품고 온 그 환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우린 싸우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청껏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금강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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