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양사의 타락, 급식 비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김성호 기자]
때로 듣게 된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음을. 때로는 보게도 된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단 걸.
부조리한 일들이 수시로 삶 가운데 대가리를 들이민다. 부도덕하고 심지어는 불법적인 일들이 세상 가운데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원래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 온갖 합리화와 변명들이 쏟아지고는 한다. 인간은 그렇게 무력해져 간다.
▲ <겨울캠프> 스틸컷 |
ⓒ JIFF |
부조리가 탄생하는 순간
관행이라며 당당히 뇌물을 요구하던 거래처 임원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던 이를 본 일이 있다. 담당 공무원이 은근히 '뽀찌'를 요구한다며 한탄하는 사업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있다. 제 일터에서 공금이며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빼돌리는 노동자를 발견할 때도 있다. 세금을 탈루하려 없는 직원을 만드는 업주는 또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그러하다고, 사람이 살아가는 게 다 그렇지 않냐고,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어찌 사느냐고, 문제 있는 이가 문제없는 이를 다그치는 광경 또한 살아오며 수십 차례쯤은 족히 마주하였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특별상영: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소개한 <겨울캠프>는 부조리가 탄생하는 순간을 비춘다. 1995년생 젊은 감독 장주선의 네 번째 단편으로, 29분의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어느 악의 탄생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 <겨울캠프> 스틸컷 |
ⓒ JIFF |
유혹 앞에 흔들린 싱글맘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보통 들어가는 게 아니다. 주영이 아토피를 앓고 있어 먹을 것부터 입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닌 탓이다. 방학 때마다 아토피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캠프에 다니기도 한다. 웬만한 해외여행에 드는 비용을 아토피 치유 캠프 같은 것에 들여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괜찮다. 그렇게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니까.
이혼한 싱글맘이 집에서 가정주부로만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주영을 돌보는 한편으로, 은혜는 새로 부임한 직장에서도 성실하게 일한다. 꼼꼼하고 야무진 성격답게 전임자가 남긴 서류부터 철저히 들여다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식재료 공급 업체로부터 물건을 납품받은 서류가 빠져 있는 것이다. 사무실부터 창고까지 샅샅이 뒤지지만 보이지를 않는다.
영화는 한편으로 은혜의 딸 주영이 겪는 어려움을 비춘다. 주영은 아토피 때문에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초등학생이다. 또래 친구들이 군것질을 할 때도 참고 지내느라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영양사인 엄마가 꼼꼼하게 관리할수록 반감 또한 커지는 건 당연지사. 마침내 몰래 음식을 먹다 아토피가 심해져 은혜와 갈등을 빚는다.
▲ <겨울캠프> 스틸컷 |
ⓒ JIFF |
그토록 흔한 부조리의 반복
<겨울캠프>가 다루는 이야기는 기실 새로운 게 아니다. 영양사 업무를 아는 이라면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한다는 사실을 들어본 일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식자재 업체가, 때로는 영양사며 기관 관계자들의 요구로, 이중 장부가 만들어지고, 거짓 서류가 작성된다. 납품단가가 적게는 두어 배, 많게는 십수 배까지 부풀려지는 사례도 흔히 발견된다.
영화에서처럼 양을 속이거나, 품질이 낮은 제품을 끼워 넣는 경우도 많다. 한번씩 경찰이 관련 업체의 꼬리를 잡아 수사에 나서면 식자재 단가를 부풀린 이들이 뭉텅이로 검거되고는 한다. 급식비리라는 이름으로 보도되는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학교와 유치원, 병원과 회사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곳에서 비슷한 문제가 자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 JIFF |
대구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가능성을 말하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엄마라는 책임 때문에 은혜는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윤리의식을 저버린다. 선을 넘고 부조리를 행하는 많은 이들이 아마도 비슷한 핑계를 댈 것이다. 나 혼자 좋자고 그랬겠느냐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가 이와 같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겨울캠프>가 은혜의 타락 이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혹 앞에 타락하는 이를 그리기는 쉽지만, 비슷한 상황에서도 타락하지 않는 이를 그려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몰락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쉽다.
유혹 앞에 타락하고 우연적인 계기로 몰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는 관객이 특별한 감상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락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거나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면 보다 시사점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겨울캠프>는 지난해 열린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지역 경쟁부문인 애플시네마 대상을 받았다. 장주선 감독은 고향인 대구에서 영화를 배우고 시작한 지역 영화계 인재이며, 영화 촬영지가 대구라는 점 역시 지역영화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 독립영화 특별상영을 위해 이 작품을 초청한 데는 대구 영화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의 성격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판단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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