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고 안온할건가, 저항할 건가... 그것이 문제로다

김형욱 2024. 5. 2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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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김형욱 기자]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저가 모든 걸 희생하며 유인원 동족을 지켜낸 후 수세대가 흐른다. 극소수의 퇴화한 인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유인원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다. 유인원의 일명 '독수리 부족'은 마을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데 족장의 아들인 노아가 결속 의식을 위해 산꼭대기 독수리 둥지에 올라 알 하나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알이 터지고 다시 길을 떠난다.

중간에 가면을 쓴 부족, 일명 '가면 부족'과 조우하고 노아가 타고 온 말을 본 그들은 이내 노아의 독수리 부족 마을로 들이닥친다. 모든 걸 불태워버리고 족장이 죽었지만 노아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노아, 현명해 보이는 고전 지킴이 라카를 만나고 여자 인간 메이도 만난다. 그런데 라카가 죽고 노아와 메이는 가면 부족에 붙잡힌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가면 부족의 수장 프록스무스 시저가 이끄는 해변가 왕국. 가면 부족의 통제 하에 여러 부족이 붙잡혀 와서 같이 살고 있다. 노아가 보기엔 붙잡혀온 노예들이 보이지만 프록스무스에겐 모두 유인원의 일족인 왕국이 보인다. 한편 메이는 알고 보니 퇴화하지 않은 인간이었고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노아는 선택해야 했다. 프록스무스를 따를 것인지, 메이와 함께 일을 저지를 것인지.

'혹성탈출' 시리즈의 위대한 유산을 잇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1968년에 시작해 197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이후 수십 년만인 2001년에 팀 버튼이 되살려 흥행했지만 속편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 좋은 소재를 할리우드가 그냥 지나칠 리는 없으니 2011년에 리부트판으로 나와 2017년까지 3부작 트릴로지를 완성했다. 보기 드문 명작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다시 7년이 흐른 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 나왔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부제가 많은 걸 대변한다. 시저로 대변되는 천지개벽의 한 시대가 저물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위대한 트릴로지의 유산을 잇는 데는 성공했으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그리 참신하진 않았다.

하여 이 영화를 감상할 때 '유산'을 어떻게 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가 또는 새로운 시대를 얼마나 '참신'하게 열어젖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가로 호불호가 약간이나마 나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영화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이 수려하게 만든 수작이라 할 만하다. 아주 좋은 각본에 탁월한 영상미, 튀지 않고 적절한 연출까지 고루고루 잘 맞았다.

안온이냐 저항이냐, 그것이 문제다

전작들이 유인원 대 인간 사이의 전쟁을 다뤘다면 이번엔 유인원(독수리 부족)과 유인원(가면 부족) 간의 싸움을 다뤘다. 그 옛날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했던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또는 프록스무스의 정책인지 거의 죽이지 않고 부족 자체를 흡수하려 한다. 그러고 나서 노예처럼 부리는가 싶다가도 철저히 감시하진 않는 것 같다. 함께 사는 모양새이긴 한 것이다.

여러 면에서 로마 제국의 시작을 본뜬 것으로 보이는 프록스무스의 자칭 '왕국'은 받아들이면 번영을 누리지만 저항하면 철저한 응징을 실시한다. 그것이 그의 논리이자 신념이고 정책이다. 웬만한 이라면 그에게 적당히 수그리며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다. 좋은 예가 트레베이션인데 그는 메이처럼 퇴화되지 않은 인간으로 갇혀 있지만 프록스무스에게 로마사를 읽어주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

반면 노아는 어떨까?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대홍수 때 야훼의 명을 받아 방주를 만들어선 가족과 동물들을 태워 생존에 성공했다는 성경 속 이야기처럼 영화 속 노아도 탈출에 성공할 것인가? 물론 그러기 위해선 우선 홀로서기부터 해야 한다. 그는 독수리 부족에서 어른이 되는 결속 의식을 아직 행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먼저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블록버스터의 예시

이 영화는 장엄한 대전쟁 시대의 서막으로 읽힌다. 지구 어딘가에 프록스무스보다 훨씬 강력한 집단 또는 왕국이 존재할 테고 노아의 부족은 그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메이처럼 퇴화하지 않은 인간 무리도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편 인간으로서 이 영화를 볼 때 유인원의 편에 서야 할지 인간의 편에 서야 할지 헷갈린다. 조화를 이룰 순 없을까.

영화는 노아의 지극히 개인적인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뿌린 <듄: 파트 2>를 보면 주인공 폴이 한순간에 조국을 잃고 죽음을 무릅쓴 먼 여정을 떠나지 않는가. 노아의 여정이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폴은 다른 부족으로 파고들어 독재자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노아는 자신의 부족을 지켜내고 싶어 할 뿐이다.

블록버스터로서 최소한의 만듦새는 유지하되 역사, 정치, 사회, 철학 등 다분히 인문학적인 요소들을 곳곳에 포진시켜 꽤 높은 수준의 생각거리들을 던진다. 이룰 수 있는가, 지킬 수 있는가, 되찾을 수 있은가, 이대로 충분한가, 대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도 뒤따라 온다. 부디 흥행에 성공해 수작 블록버스터 시리즈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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