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장관, 文회고록 반박 "北선의에 국가안보 맡기면 큰 문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20일 "북한의 의도, 북한의 선의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안보를 맡기면 실질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드러냈다고 밝힌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사실상의 반박이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 회담장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처럼 답했다. "그 능력을 무시한 채 북한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퇴임 2주년을 맞아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의도란 것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거기에 국가 안보를 의지해선 안 된다"며 "북한의 경우 (핵·미사일을 사용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고, 능력도 갖고 있다. 왜 의도만 평가하느냐”며 “그것은 국가 안보 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뮌헨회담이란 유화정책 결과로 다음 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며 "이번 회고록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북한 정권의 의도와 군사적 능력이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더이상의 팽창주의는 추구하지 않겠다는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의 말만 믿고 일부 영토 병합을 묵인하는 1938년 '뮌헨협정' 체결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듬해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2019년 '하노이 노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협상팀은 북한의 제안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핵 담판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는 듯한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 장관은 "북핵 문제의 책임, 그 협상의 실패는 이 문제를 야기한 북한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북핵 문제를 동맹국인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협상 결렬은 북한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장관은 또 문 정부 때 이뤄진 탈북 선원 강제북송도 에둘러 비판했다. 지난해 어선을 타고 해상으로 탈북한 한 탈북민이 "만약에 지금도 한국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면 탈북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그러면서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한국으로 온 두 북한 사람을 강제로 추방했다"며 "탈북민의 증언을 들어보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란 것이 과연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대단히 분명해진다"고 덧붙였다.
당시 문 정부는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이는 국내외에서 인도적이지 못한 행위로 큰 비판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해당 사건을 일지로 한 줄만 포함했을 뿐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대남 전략·전술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통전부)가 '노동당 중앙위원회 10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는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김 장관은 "지난해 말 이후 북한은 '남북 2국가론'을 주장하며 '통일 지우기'를 진행하고 있다"며 "아직 북한이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통전부' 역시 '당 중앙위 10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심리전 중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통전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일부 기능의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이름을 바꿨지만 남한에 대한 '적화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전부는 노동당 산하 기관으로 대남 선전·선동과 대남 사업을 담당해온 조직이다.
김 장관은 오는 24일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함께 과거 실제 피랍이 발생한 장소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978년 한국 고교생 5명이 북한 공작원에 납북된 현장인 전북 군산 선유도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를 확산하려는 행보로, 장관이 납북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오는 21일 공포한다고 이날 밝혔다. 7월 14일(1997년)은 탈북민의 법적 지위와 정착 지원 정책의 근간이 되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날이다. 통일부는 오는 7월 14일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북한 주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기념일 행사를 준비중이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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