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줄어 어렵지만 마을 위해 힘 닿는 데까지 뛰겠습니다"
함양군은 총 262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일이라면 항상 발벗고 나서는 마을이장이들을 우리는 만나볼 수 있다. 주간함양은 ‘우리 마을이장들을 소개합니다’ 코너를 통해 마을지킴이 이장들을 매주 소개하고자 한다. 각 마을이장으로부터 마을 현황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기자말>
[주간함양 김경민·곽영군]
▲ 대치마을(대궁리) 문성욱 이장(62) |
ⓒ 주간함양 |
대치마을 문성욱 이장
대치(大峙)마을은 원래 사기소(沙器所)라는 눈박이 그릇을 만드는 점촌마을로 형전자락에 몇 가구가 모여 살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밀성 박씨가 단성 진태에서 왜란을 겪은 후 피란지를 찾아 나선 곳이 이 마을이다.
지금 마을 뒤의 술터(酒谷)에다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면서 사안마을 뒷산을 넘어다니게 되면서 큰재(大峙)를 넘는다고 하여 대치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치마을은 현재 10여가구의 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문성욱 이장이 3년째 이끌고 있다. 마을은 작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문성현 전 위원장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마을주민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주민들은 잘 모르시지만 우리 마을은 문성현 전 위원장님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주민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마을도 작은 편에 속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남아있는 주민들을 위해 이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재궁마을(대궁리) 김진종 이장(68) |
ⓒ 주간함양 |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 후에 김녕 김씨가 충북 영동에서 지리산으로 피란을 가던 중 현재의 재궁을 들러서 여기가 좋은 터라고 생각하였다.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 하여 다래덩굴을 쳐내고 마을을 개척하여 마을 이름을 재궁이라 지었다. 이곳의 지형이 두 개의 활이 놓여있는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우직하고 뚝심이 센 김생원집 머슴인 우가가 호랑이 잡은 전설이 있다.
30여가구의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재궁마을에는 김진종 이장이 8년째 마을을 이끌고 있다.마을 일을 오랜 기간 맡아온 김 이장은 올해도 마을 주민들을 위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겠다고 전했다.
"어느 마을이나 상황은 비슷하겠지만 저희 마을 또한 고령화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 간에 화합이 잘 이루어져서 마을이 순탄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이장으로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사안마을(대궁리) 박오영 이장(53) |
ⓒ 주간함양 |
사안(沙雁)마을의 옛 이름은 사한(沙閑)이라 하였다. 조선 선조때 밀양 박씨가 청주에서 임진왜란으로 인해 내려와 안의성을 지키다가 왜구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남계천 하류의 백사장 근처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사한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마을 뒤 산봉우리에는 한양으로 통신한다는 봉화봉이 있다. 그러나 일제때 한(閑)자가 부당하다면서 주위의 수세나 산맥이 평사락 안(雁)이라하여 마을 이름을 사안으로 고쳤다.
마을 중앙에는 약 6백 년의 수령을 가진 둘레 7미터의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담고 지켜주고 있다.
박오영 이장이 6년째 이끌고 있는 사안마을에는 30여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양파를 많이 재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희 마을에는 600년된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아마 군에서도 이렇게 큰 정자나무가 있는 마을은 없을 거예요. 여름에는 이 정자나무가 마을 쉼터가 되기도 하죠."
올해 6년째 마을을 이끌고 있는 박 이장은 "앞으로도 마을 주민을 위해 열심히 달리겠다"고 전했다.
▲ 성애마을(대궁리) 김기준 이장(68) |
ⓒ 주간함양 |
성애(聖愛)마을의 경우 1940년대에 대궁리 산 1번지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곳에 서씨가 몸이 불편하여 수양을 하기 위해 집을 짓고 기거하게 되자 이 소문이 전국 각지로 전파돼 각처에서 나환자들이 모여들어 나환자 집단촌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약수 우물은 현재도 사용 중이며 그 당시는 밭 사락안(沙落雁)이라 불리어 왔으나, 1980년대에 사안마을에서 분동하여 성애마을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전부 음성환자로서 가족처럼 화합하며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현재 성애마을은 김기준 이장이 12년째 이끌고 있으며 10여 가구, 1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이 예전에는 농사도 짓고 축사도 많이하면서 많은 주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들 나간 상황이고 점점 규모가 줄어들고 있지요. 인구가 점점 줄면서 마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힘 닿는 데까지 마을을 위해 이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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