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권위’ 찾아요”…‘돈’만 쫓는 대중음악 시상식 [곪아가는, K-팝 시상식①]
주최사만 다를 뿐 시상 내용·기준 등 차별점 없어
지난 3월 26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하 음콘협)는 케이팝(K-POP) 시상식 써클차트 뮤직 어워즈의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무분별하게 생겨난 케이팝 시상식이 음악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자신들 역시 시상식을 진행하던 주최사 중 하나로 이러한 지적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직접 제동을 건 셈이다.
음콘협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시상식만 2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최근 5년간 새롭게 생겨난 시상식만 9개가 넘고, 올해 신설된 시상식도 3~4개에 달한다. 사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음원 플랫폼 업체, 대중음악 음악 관련 단체나 협회, 언론사 등 주최사만 다를 뿐 시상 내용이나 기준, 성격 등에서 큰 차별점을 찾긴 힘들다.
당장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을 보유한 미국만 하더라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an Music Awards, AMA),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Music Awards, BBMA) 등 단 3개의 대중음악 시상식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MTV Video Music Awards, VMA)나 CMT 뮤직 어워즈,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Soul Train Music Awards), 독립 음악 시상식(Independent Music Awards, IMAs), 음악 비디오 제작자 협회 시상식(Music Video Production Awards, MVPA) 등 다수의 시상식이 존재하지만, 각각 고유의 확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CMT 뮤직 어워즈는 컨트리 뮤직비디오 및 TV 공연에 대한 팬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는 흑인 최고의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에 상을 수여한다. 미국 음악 산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상식 고유의 정체성까지 이어나가는 식이다. 주최사만 다를 뿐 그 내용이 대부분 흡사한 국내의 시상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내 시상식도 처음부터 이 지경은 아니었다. 불과 201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도 골든디스크, 멜론뮤직어워드, 서울가요대상, 한국대중음악상, 가온차트어워즈(현 써클차트어워즈), 엠넷아시안뮤직어워즈 등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시상식이 운영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당시엔 전체적인 산업 규모가 작았을 때라 협찬도 받기 어려웠는데, 권위 있는 시상식을 만들어 보자는 대의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워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과거에 권위 있다고 여겨지던 시상식들도 수익사업에 몰두하긴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본격적으로 시상식 시장에 변화가 생긴 건 2010년 후반이다. 케이팝 산업의 규모가 급성장하면서 시상식 역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른 셈이다. 음콘협 최광호 사무총장은 “기존의 시상식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플랫폼이라던지, 국내 최고의 음악 방송국, 공인 차트로서의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시상식 등 각자의 명분을 가지고 산업적 의미가 있는 시상식을 운영했다면 2010년 후반, 유명 아이돌을 내세운 미디어 중심의 시상식이 등장한 이후엔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9년 한 매체의 케이팝 시상식 신설 이후 언론사들의 시상식은 매년 쏟아졌고, 오죽하면 업계에서 스포츠신문, 온라인 연예매체는 시상식 만드는 게 유행이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수익을 남기고자 개최 장소를 국내에서 국외로 옮기는 시상식도 많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공영방송인 KBS마저 기존의 ‘가요대축제’의 일본 개최를 발표한 이후 대중의 비판이 잇따르자, 이름만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로 바꿔 결국 일본에서 개최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 티켓값을 크게 부풀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에서 열린 한 시상식 티켓 가격은 5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최 사무총장은 “사실상 누군가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워낙 아티스트가 가진 콘텐츠 파워가 핫하고 세다 보니, 시상식이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영상 판권을 파는 등 영리, 수익 목적의 비즈니스 사업으로 변질됐다고 본다”면서 “지난 연말 지상파마저 해외에서 연말 시상식을 개최했는데, 출연 아티스트에게 출연료 대신 상을 줬다. 비용은 아끼고, 티켓을 팔아 수익은 남기는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가 결국 난립의 문제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시상식이 케이팝 팬심을 악용한 수익 추구 수단이 되면서 비용 절감과 경험 부족에 따른 운영 문제도 속속 불거졌다.
최근 일부 시상식 무대 및 관객석에서 아티스트의 추락 사고와 객석 몸싸움 발생 등의 안전 문제가 발생한 것도 이에 따른 부작용이다. 지난 2월 열린 한 시상식에선 스탠딩석 관객이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해 그 자리에서 용변을 봤다는 글이 온라인에 퍼지기도 했고, 지난 1월 타이에서 열린 한 시상식 사회를 맡은 아티스트는 “내 생애 최악의 음향 시스템”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올해 초 타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 신설 시상식은 개최를 단 2주 앞두고 갑자기 취소돼 출연 아티스트와 팬, 업계 관계자 등을 모두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음콘협은 성명서를 통해 “낮은 품질의 연출과 음향으로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일이 반복되고, 아티스트가 추락 사고를 겪는 일도 있었다. 주최 측은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원활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현장을 관리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팬 간 몸싸움 등의 사고에 대처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면서 “이는 관객들의 안전에도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시상식이 수익성을 쫓아가는 행사가 되면서 생겨난 현상들이다. 시상식이 우리 음악산업 전반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지를 반드시 짚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상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CJ ENM이 주최하는 엠넷아시안뮤직어워즈도 (1999년 최초 시상) 10년 전 시청률이 5%대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2021년 이후 0%대의 매우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써클차트 뮤직 어워즈도 과거 시상식 풀영상이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 동시접속자수가 3만 5000여명밖에 되지 않았고 조회수, 좋아요 수 등 주요 지표가 모두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최 사무총장은 “단순히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엔 이 무대를 수익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지만, 지금은 자체 콘텐츠, 단독콘서트 등의 온·오프라인 콘텐츠가 워낙 풍부해 질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상식 콘텐츠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 권위 있는 시상식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몇몇 주최사를 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한 대중음악 관계자 역시 “대부분의 대중음악 종사자가 케이팝 시상식의 난립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막기위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 단순히 언론사, 기획사, 아티스트 심지어는 팬덤 딱 잘라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상황이다. 즉 누가 원인제공을 해서 이 지경까지 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누군가 나서서 총대를 메고, 화두를 던졌다는 것 차제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논의를 시작으로 대중음악 시상식에도 조금은 생산적인,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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