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팔' 키움 장재영, 마운드 떠나 타석에 선다
[양형석 기자]
▲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는 키움 장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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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전체가 주목하던 강속구 유망주가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한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팔꿈치 부상으로 올 시즌 한 번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던 우완 장재영이 구단과의 면담 후 야수로 전향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장재영은 덕수고 시절 투수 못지 않게 타격에서도 재능을 보인 바 있고 프로 입단 후에도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타격훈련을 병행하기도 했다. 키움 구단이 '야수 장재영'의 빠른 적응과 활약을 기대하는 이유다.
장재영은 구단과의 면담 과정에서 유격수 도전 의지를 밝혔다. 물론 히어로즈는 강정호와 김하성으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거 유격수를 둘이나 배출했지만 투수였던 장재영이 수비부담이 큰 유격수를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키움 구단은 장재영의 타격재능을 살리기 위해 유격수와 함께 중견수 등 외야 수비도 병행시키기로 했다. 장재영은 오는 21일 두산 베어스와의 퓨처스리그 경기부터 지명타자로 출전할 예정이다.
투수들의 타자전향, 성공만큼 실패도 많다
최근에는 고교야구에서도 지명타자 제도를 쓰지만 과거에는 고교야구에서 투수들이 타석에 설 기회가 적지 않았다. 이승엽(두산 감독)과 이대호 같은 KBO리그의 전설적인 타자들은 모두 투수로 프로에 입단했고 추신수(SSG랜더스) 역시 부산고 시절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였다. 이호준(LG 트윈스 수석코치)이 루키 시즌 김재현으로부터 20호 홈런을 허용했던 '투수'였다는 사실 역시 야구팬들에게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에도 타격과 투구에서 동시에 재능을 보였던 선수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1999년생 동갑내기 강백호(kt 위즈)와 곽빈(두산)이다. 서울고 시절 투수와 포수를 번갈아 맡았던 강백호는 2017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결승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승리를 거뒀고 타석에서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야구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강백호는 프로 입단 후 마운드에 오르지 않고 타격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금은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성장한 곽빈의 타격재능도 만만치 않았다. 곽빈은 배명고 시절 시속 153km의 강속구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이자 주말리그 타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타격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투타를 겸비한 선수였다. 특히 2017년 U-18 야구월드컵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안우진(사회복무요원) 대신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마운드에 서지 않는 날엔 1루수 또는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한국의 준우승을 견인했다.
이처럼 KBO리그에는 학창시절부터 투타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이들이 모두 포지션을 변경해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86년 18승으로 신인왕에 선정됐던 김건우는 교통사고 이후 야수로 전향해 세 시즌 동안 활약했다. 타자로 통산 150경기에 출전한 김건우는 타율 .255 117안타 13홈런 60타점 50득점을 기록했는데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시절 박노준과 함께 고교야구를 호령했던 점을 생각하면 만족하기 힘든 성적이었다.
현역 시절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두 번의 리그 탈삼진왕, 그리고 10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던 타이거즈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한화 이글스 2군 감독)도 한 때 방망이를 잡은 경험이 있다. 이대진은 어깨부상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던 2002년 잠시 타자로 전향해 23경기에 출전했지만 36타수 3안타(타율 .083) 무홈런 4타점 2득점에 그치며 '진흥고 4번 타자'의 위용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꽃 피우지 못하고 타자전향
히어로즈의 감독과 KIA 타이거즈의 단장을 지낸 장정석 전 단장의 장남 장재영은 덕수고 1학년 때 이미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면서 특급유망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학년 때는 타자로 출전해 .467의 타율과 1.423이라는 만화 같은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며 투타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3학년 때 시속 157km의 강속구를 던지면서 1차 지명으로 키움에 입단했다.
모기업 없이 스폰서를 받아 구단을 운영하는 히어로즈는 장재영에게 무려 9억 원의 계약금을 안겼다. 이는 안우진의 6억 원을 뛰어넘는 구단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고 KBO리그 전체에서도 2006년 한기주(10억 원)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만큼 장재영에 대한 히어로즈의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재영은 루키 시즌 17.2이닝 동안 27개의 사사구를 내주는 심각한 제구난조를 보이며 1패 평균자책점 9.17로 부진했다.
안우진이 리그 최고의 투수로 거듭난 2022년에도 장재영은 14이닝을 던지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7.71에 머물렀다. 키움은 작년 프로 3년 차가 된 장재영에게 5선발 자리를 맡겼고 장재영은 7월5일 NC다이노스전에서 5.1이닝 2피안타 4볼넷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하지만 여전히 제구가 불안했던 장재영은 71.2이닝 동안 74개의 사사구를 허용하며 1승 5패 ERA 5.53의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키움은 올해 안우진, 이승호(현역)의 입대와 정찬헌의 허리수술 등으로 선발진에 큰 구멍이 생겼고 선발투수로 경험이 쌓인 장재영의 잠재력이 폭발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장재영은 팔꿈치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고 수술과 재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19일 '타자전향'이라는 다소 뜻밖의 선택을 내렸다. 안우진과 문동주 사이 KBO리그가 가장 기대했던 강속구 유망주가 마운드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대진이나 김광삼(LG불펜코치)처럼 타자로 활약했다가 부상이 회복되면 마운드로 돌아갔던 사례들도 있었기에 이번 장재영의 타자 전향이 영구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수로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유망주 장재영의 타자전향은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하다. 고교 시절부터 '특급 유망주'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장재영은 과연 투수로서 깨지 못했던 유망주의 껍질을 타자로서 깨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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