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글로벌 최저한세]①주요 50대 기업 64% "납세 대상·규모 깜깜이"…세금 증가 우려

김형민 2024. 5. 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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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 대상 여부·규모 파악 못해
"납부 확신" 기업은 5곳뿐
전 세계 140개국서 도입
기업들, 규모 등 추정 불가능
실제론 더 많이 낼 가능성 커
자유로운 해외 영업활동 위축

해외 자회사가 최저세율(15%)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받을 경우 모기업이 차이만큼 메우는 글로벌 최저한세가 올해부터 시행됐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대상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납부해야 할 세금 규모, 그에 따른 영향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 지 4개월 이상 흐른 현재 시점에서 각 기업은 자사가 납부 대상인지, 납부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납부해야 하는 시점인 2026년 6월까지 2년가량이 남았지만,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글로벌 최저한세’가 자칫 법인세 폭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아시아경제가 글로벌 최저한세를 납부해야 하는 대상기업으로 예상되는 국내 50대 기업의 사업보고서(지난 3월 주주총회 기준)를 전수조사한 결과, 50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32곳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납부 대상 여부와 세액 규모 등 전반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율로는 전체의 64%다.

이들 32개 기업들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검토 중이긴 하지만 추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 기업은 14곳, 다른 설명 없이 "검토 중"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보인 기업도 똑같이 14곳이었다. "검토는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는 기업은 4곳뿐이었다.

반면 "(세액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글로벌 최저한세를 납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기업은 5곳(10%)이었다. HD현대, 삼성SDI, 에쓰오일, 롯데지주였다. HD현대는 "2021년과 2022년 사업연도의 연결 재무제표상 매출액이 각각 7억5000만유로 이상이며 종속기업이 진출한 국가 중 법정세율이 15%에 미달하는 국가는 헝가리, 아랍에미리트(UAE)와 마셜제도가 있다"며 "2023년 재무제표를 기초로 국세조세조정에관한법률 제80조에 의한 전환기 적용면제 테스트를 수행한 결과, 종속기업들이 속한 아르헨티나와 UAE가 글로벌 최저한세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자세히 밝혀 눈길을 끌었다.

검토 중인지를 밝히지 않고 "영향이 없을 것 같다"거나 "(자사엔)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고 한 기업은 17곳(34%)뿐이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세계 각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에 대해, 특정 국가에서 자회사가 최저세율 15%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경우 나머지 세금을 모기업이 있는 국가에 납부토록 해서 세율 15%를 채우도록 하는 제도다.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고자 조세 경쟁을 하는 국가들을 활용해 저율 과세 국가에서 조세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의 합의로 만들어진 제도다. 합의한 국가는 총 140개에 이른다. ‘필라2’로도 불린다.

사업보고서들에 적시된 표현들로 비춰보면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를 ‘미지의 세금폭탄’으로 받아들이는 인상이 짙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닥뜨린 분위기다. 이 세금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확정적인 표현을 자제했다. 전망하더라도 모두 이전 연도의 회계 내역을 대입해서 내놓는 ‘추측’ 수준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확신하지 않았다. 글로벌 최저한세가 올해 도입됐을 뿐 세부 규칙은 명확하지 않아 세금의 영향을 정확히 예상하기 어려운 현 상황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위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 1월1일부터 도입됐다. 적용 대상은 직전 4개 사업연도 중 2개년 이상의 연결 재무제표상 매출이 7억5000만유로(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으로, 기획재정부는 우리 기업 약 245개가 적용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자회사가 진출한 지역의 법인세율, 보조금 지급 여부, 납세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은 2년이 결코 먼 미래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제도 신설에 따른 혼선을 우려해 올해 도입하되, 실제 계산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산입보완규칙(UTPR)은 내년부터 시행, 세금 신고 및 납부는 2026년 6월부터 하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기업들은 시간을 두고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이 세금에 대한 모든 내용을 파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검토가 늦어질수록 기업들의 불안감은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정현 법무법인 율촌 공인회계사는 최근 한국배터리산업협회·한국석유화학협회·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과 글로벌 최저한세 세미나’에서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6768억원)과 SK온(6100억원)은 약 1조3000억원의 IRA 세액공제를 받았다"며 "다른 소득이나 결손이 없다면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에 따라 이 중 15%에 달하는 약 1800억원의 추가 세액을 납부해야 한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도 확실치 않다. 정 회계사는 "공시된 실적을 바탕으로 단순 수식에 넣어서 나온 수치여서 정확하진 않다"며 "실제 내야 하는 세금은 더 클 소지가 다분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관계자는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 자회사를 둘 때는 보통 모기업의 소재국에서는 여러 여건상 영업활동이 어려워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글로벌 최저한세는 이들 기업의 세액감면 효과를 떨어뜨리고 해외에서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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