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금지 논란에 소환된 '유인촌 아이패드' 사건

임병도 2024. 5. 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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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오락가락 방침에 누리꾼들 부글부글... 일각에선 KC 인증 불합리 지적도

[임병도 기자]

▲ 해외 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하는 이정원 국무2차장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 2차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6일 정부는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80개 품목에 대해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으면 해당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히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언론 등도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19일 일요일에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80개 품목 전체에 대해서 해외직구가 당장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위해성 검사를 집중 실시한 후, 6월 중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을 차단한 계획"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해외직구 금지 논란의 중심에는 'KC 인증'이 있습니다. 개인 해외직구 상품에 안전 인증을 의무화해 사실상 해외직구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돌았고, 실제로 'KC 인증 민영화'를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KC 인증은 현재도 민간 인증 기관이 시행하고 있다"며 "이번 해외직구 대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직구를 가능하게 했던 유인촌의 아이패드 사건 

KC 인증은 안전·보건·환경·품질 등을 정부가 인증하는 것으로 한국에 정식 출시하는 제품들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강제 인증 마크입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 해외 직구 제품에도 KC 인증 마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해외직구 KC 인증이 왜 문제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2010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아이패드 사건입니다.
 
 2010년 4월 26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아이패드를 들고 '전자출판 육성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미 애플사가 4월초부터 공식 시판중인 아이패드는 현재 정부에서 현행법 등을 들면서 통관을 금지해 놓은 품목이다.
ⓒ 문화체육관광부
 
당시 아이패드가 해외에서는 공식 출시됐지만 한국은 전파법 등의 이유로 국내 반입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전파 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고가의 비용과 회로도 등을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현직 장관이 공식 브리핑 자리에 아이패드를 들고 나타나 논란이 된 것입니다. 누리꾼들은 정부가 해외에서 개인적으로 구매한 아이패드조차 불법이라고 규정해 놓고 장관은 버젓이 사용했다며 비판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통관) 금지시킨 쪽이 문제"라며 방송통신위원회와 관세청 등에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관세청 등에선 "(통관) 금지는 합법적인 절차"라면서 "정부가 정당한 공무집행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라며 반발했습니다(관련기사: 아이패드 사용, 유인촌은 되고 국민은 안된다? http://bit.ly/bpBox8).

결국 정부는 '시험 연구용은 반입 가능'이라고 해명했다가 개인용으로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구매하는 경우 1인당 1개는 전파 인증이 필요 없다는 정책을 발표합니다. 이 사건 이후로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전자 제품을 해외직구로 구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5.16 발표와 함께 '유인촌 장관의 아이패드' 사건이 다시 재조명된 이유입니다.

KC 인증의 문제점
 
 IT 유튜버 잇섭의 KC 인증 관련 발언
ⓒ 유튜브 갈무리
 
정부는 KC 인증은 해외직구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해외직구와 KC 인증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에 대한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습니다. 

구독자 250만명을 보유한 유명 IT 유튜버 < ITSub잇섭 >은 지난 17일 직접  KC 인증을 받으려고 했던 일화를 영상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그는 "충전기 하나를 KC 인증받으려면 400만 원 정도 든다"라며 고가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다른 사람이 KC 인증을 받은 제품을 누군가 수입하려면 또다시 인증을 받아야 한다"며 불합리한 점을 꼬집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비영리 기관만 할 수 있던 KC 안전 인증을 민간 영리법인도 할 수 있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 관리법(전안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당시 국가기술표준원은 규제 완화를 통해 안전 인증기관이 늘어나 기관 간 경쟁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KC 안전 인증 처리기간이 단축되는 등 관련 서비스가 개선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KC 인증 비용은 고가이며 그 절차 또한 복잡하고 오래 걸려 중소기업들은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KC 인증 대행 업체를 찾습니다. 일각에선 KC 인증 제도가 대기업을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고 제품 가격이 상승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정부는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해외직구 금지에 대한 오락가락 해명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이 '갈라파고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갈라파고스경제(갈라파고스화, 갈라파고스 증후군)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제조업(주로 IT 산업)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마치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원래는 일본의 상황만을 일컫는 말로 일본 내에서 주로 사용되던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우리의 산업이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 등 다른 나라의 비슷한 상황에도 확장, 사용되고 있다. (출처: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 사전)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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