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음악경연대회 참가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신필규 2024. 5. 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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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논란

[신필규 기자]

 12일(현지시간)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2024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스위스 대표 니모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스위스 대표가 유로비전에서 우승한 것은 1998년 셀린 디옹 이후 처음이다.
ⓒ 연합뉴스
 
유럽 최대의 국가 대항 노래 경연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2024년 행사가 지난 12일에 마무리 되었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여러 가지 화제를 모았던 이번 대회는 마지막 날에 이르러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대회 최초로 커밍아웃 한 논 바이너리(여성/남성으로 구분된 이분법적인 성별정체성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가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주인공은 스위스를 대표해 대회에 참가한 가수 니모(Nemo)이다. 특히나 니모가 부른 노래 '더 코드(The Code)'는 니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이를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니모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무대에 논 바이너리를 상징하는 자긍심의 깃발을 들고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니모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열리던 공연장에 논 바이너리 깃발을 들이기 위해 이를 몰래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니모의 팬들이 논 바이너리 깃발을 들고 공연장에 입장하려고 하자 진행요원들이 그 깃발을 버리고 들어올 것을 명령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니모는 만약 자신이 깃발을 숨겨 들어가지 않았다면 똑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유럽방송연합의 조치는 믿을 수 없으며 이중 잣대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발언도 했다.

"유로비전이 내 논 바이너리 깃발을 빼앗을 것이었기에 나는 몰래 숨겨서 들고 와야만 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해냈다. 다른 누군가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부당한 지침 앞에서, 성소수자 가수가 보여준 행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깃발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니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부당한 규칙에 일단 순응하고 후에 이를 비판하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유럽방송연합이 거의 모든 유럽 방송사들의 연합 단위라는 점에서 추후에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고 해도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니모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주어진 선택지에서 더 나아가 부당한 규칙은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남겼다. 즉 직접 저항을 실천하고 사람들에게 거기에 함께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9일(현지시간) 유럽 최대 대중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열리고 있는 스웨덴 말뫼에서 이스라엘 대표의 대회 출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말뫼에서는 이스라엘 참가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유로비전 준비 기간 1천명 이상의 스웨덴 음악인들이 이스라엘 출전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2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많은 논란 속에서 개최되었다. 참가국 중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각종 비인도적 행위를 저지른 이스라엘이 포함되어 있던 게 문제였다. 특히 이 상황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유로비전 참가자격이 박탈된 러시아의 사례와 비교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유로비전에 대한 보이콧 요구도 있었고 실제로 영국에서는 작년에 비해 방송 시청률이 25%가 감소했다.

또한 참가자들 중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작년 우승자인 스웨덴의 가수 로린(Loreen)은 만약 이스라엘이 올해 유로비전에서 우승한다면 직전 우승자가 올해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전달하는 관례를 깨고 빈손으로 무대에 올라갈 생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이익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용감한 고발

그리고 또 하나의 두드러진 입장을 보인 참가자가 있다. 바로 아일랜드를 대표해 유로비전에 참가하였으며 역시나 논 바이너리인 가수 밤비 터그(Bambie Thug)이다. 첫 번째 준결승전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밤비 터그는 유럽방송연합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연대의 퍼포먼스를 공연 직전에 금지시켰다고 폭로했다. 원래 의도대로라면 밤비 터그는 고대 켈트 문자인 오감 문자로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유(Freedom for Palestine)'와 '전쟁을 멈춰라(Ceasefire)'라는 문구를 의상에 새길 예정이었다. 밤비 터그는 이에 대해 '정의와 평화를 옹호하는 저에게 의상에 이러한 메시지를 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11일(현지시간)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2024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결승전에 앞서 아일랜드의 밤비 터그가 깃발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대회가 종료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비판은 이어졌다. 밤비 터그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했다.

"유로비전의 가치는 우리가 실현했습니다. 유럽방송연합은 유로비전과 달라요. 엿 먹어라 유럽방송연합, 난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요.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요."

사실 우승자인 니모 또한 마찬가지로 읽힐 발언을 기자회견장에서 남겼다. 니모는 우승 직후 자신이 실수로 유로비전 트로피를 부순 일을 언급하며 "부서진 트로피는 고치면 된다. 그런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도 같은 일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발언했다.

불완전하고 지저분한 조건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개최사인 유럽방송연합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듯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 전체와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이다. 당연히 가수들에게 이 대회는 꿈의 무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 유로비전에는 극명한 명과 암이 존재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참가로 인해 대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그랬다. 만일 이에 배치되는 신념을 가진 가수들이 있다면 불참을 선언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유로비전은 너무나 큰 기회와 영광이 기다리는 대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행사에 문제가 있다면 답은 '참가와 불참' 이 두 가지뿐일까. 올해 유로비전에 참가한 몇몇 가수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행사에 부조리한 그늘이 존재하는 와중에도 여기에 직접 맞서고 함께해주길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며 주최측의 부당함을 비판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최초의 커밍아웃한 논 바이너리 우승자를 탄생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유로비전의 주최측인 유럽방송연합이 한 것보다도 대회가 본연의 가치에 맞는 쪽으로 움직인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작가이자 평론가인 듀나가 언젠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말로 글을 닫고자 한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지저분한 조건 속에서 의미있는 성취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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