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십자가 모양 흰 꽃의 비밀
5월이 되면 나무들이 대부분 잎을 모두 내어 크기도 커지고 색도 짙어져서 숲이 한 달 전에 비해 완연한 초록으로 물듭니다. 때때로 짙은 녹색으로 보일 정도죠. 이맘때엔 특히 흰색을 띠는 꽃들이 많이 핍니다. 찔레꽃·마로니에·산딸기·이팝나무·아까시나무·일본목련 등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흰색 꽃을 피우죠. 그중에서도 독특한 꽃 모양을 한 산딸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산딸나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이가 많을 텐데요. 사실 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서 이미 본 적이 있는 나무일 겁니다. 네 장의 꽃잎이 선명하게 흰빛을 띠어 멀리서 보면 마치 흰 나비가 나무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여서 쉽게 알아볼 수 있죠. 학명은 ‘Cornuskousa’인데 ‘Cornus’는 산딸나무가 속한 과인 층층나무를 일컫습니다. 영어로는 ‘dogwood’라고 하는데, 여기서 ‘dog’는 단검을 뜻하는 ‘dagger’에서 유래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산딸나무 열매를 개나 먹을 ‘dogberry’라고 불러서 거기서 유래했을 거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산딸나무는 신들의 이야기에도 등장해요. 길가메시 신화를 보면 지옥으로 가려는 엔키두에게 ‘산딸나무 막대기를 들고 가지 마라, 정령들이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라고 조언을 하는 부분이 나오죠. 예수님과도 연관이 있어요. 예수님이 짊어지고 가서 못에 박힌 십자가가 바로 이 산딸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는 십자가를 만들지 못하게 하늘에서 저주를 내려 산딸나무의 키를 줄이고, 십자가 모양의 흰색 꽃이 피게 했다고 합니다만 그건 오히려 반대로 십자가 모양의 꽃을 보고 유추해서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까 싶네요.
사실 산딸나무 꽃을 자세히 보면 흰색 꽃잎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꽃잎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장의 흰 잎 가운데를 보면 초록으로 동그란 모양을 한 딸기같이 생긴 부분이 있고,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꽃들이 수십 개 모여 있죠. 꽃잎도 4장이 작게 붙어 있어요. 그래서인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뭔가 새로운 작전이 필요했던 것이죠. 총포(總苞)라고 하는 ‘모인꽃싸개’가 꽃을 아래서 받치는데 이를 둘러싼 작은 잎을 마치 꽃잎처럼 둔갑시켜서 누가 봐도 꽃처럼 보이니 곤충도 현혹됩니다. 포엽(苞葉)이라고 해요.
꽃뿐만 아니라 산딸나무 잎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 거예요. 이른 봄 노란 꽃을 피우는 산수유나무 잎과 흡사하죠. 잎맥이 특이한데, 중간의 주맥을 기준으로 측맥들이 잎 옆으로 가기보다 잎 끝부분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둥글게 나 있어요. 이는 층층나무과 나무들의 특징입니다. 층층나무과에는 층층나무 외에도 산딸나무를 비롯해 산수유나무·말채나무 등이 있는데요. 잎의 생김새가 모두 비슷합니다.
산딸나무는 열매도 특이합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열매가 익는데, 마치 축구공 모양을 하고 있죠. 요즘 어린이들은 ‘코로나 열매’라고 부르기도 해요. 모양이 코로나바이러스 모양을 닮았기 때문인데, 먹어보면 살짝 단맛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새들이 좋아하죠. 늦가을 산딸나무 근처에서 관찰해보면 직박구리를 비롯해 여러 새들이 와서 열매를 쪼아 먹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직박구리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거슬린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들은 나무들의 씨앗을 멀리 보내주는 역할을 하니 산딸나무로서는 아주 반가운 친구들일 거예요.
살다 보면 목표한 그대로 디자인이 되거나 실천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도 자주 하게 되고요. 그럴 때 가끔 원래의 목적과 달리 만들어진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궂은일을 해주시기도 하고, 친구가 대신 어려운 일을 해준 적이 있을 겁니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그 대신으로 역할을 해준 적도 있겠지요. 그렇게 서로 부족한 면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게 좋은 삶이 아닐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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