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해임안-장관탄핵안 첫 가결…1조 쓰고 '최악 오명' 국회 [21대 국회 징비록]
#. 이번 총선에서 175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을 원 구성 협상도 전에 공공연히 앞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4년전 21대 총선 직후 180석 민주당은 “관행을 거부해야 한다”(이해찬 전 대표)며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갔다. 상임위원장 싹쓸이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 지난해 9월 21일 국회에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무총리(한덕수) 해임건의안이 가결(재석 295명 중 찬성 175표, 반대 116표)됐다. 거대야당이 한 총리의 헌법·법률 위반 여부를 제시하지 못했는데도 국민의힘은 상정을 막지 못했다. ‘무기력 여당’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달 29일이면 21대 국회가 끝난다. 지난 4년간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무기로 입법폭주를 자행하고, 국민의힘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21대 국회 4년은 대화와 협치는 없고, 정쟁과 대결만 반복됐다”며 “의회정치와 정당 리더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야당은 어깃장만 놓고 여당은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최악의 국회였다”고 지적했다.
시작부터 늦었던 ‘지각 국회’
21대 국회는 시작부터 87년 체제 이후 ‘최장 지각’이었다. 임기 시작 47일 만인 2020년 7월 16일에야 개원했다. 그 전엔 18대 국회의 2008년 7월 11일(42일만)이 가장 늦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 독식을 주장하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보이콧을 하면서 대통령 시정연설 등 의사일정도 밀렸다.
민주당은 툭하면 과반 의석의 칼을 휘둘렀다. 전셋값 폭등을 불러온 임대차 3법을 강행 처리(2020년 7월)했고, 문재인 정부 말기(2022년 5월)에는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켰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도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지난해 3월), 간호법 제정안(지난해 4월), 노란봉투법·방송3법(지난해 11월) 등을 일방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적극적인 중재·협상에 나서지 못한 채 장외 규탄대회를 열곤 했다. “국민이 민주당 폭주를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구호만 외칠 뿐 집권여당답게 막힌 정국을 풀어내지 못했다. 민주당 일방독주는 9차례 거부권 행사로 이어져 결국 여권 스스로 정치적 부담을 키웠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매번 초강경 태도로 나선 민주당도 문제지만, 그때마다 관료적으로 안이하게 대처한 국민의힘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관도, 판·검사도 탄핵
국회는 지난해 2월 민주당 주도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재석 293명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했다. 국회가 국무위원을 탄핵한 것 역시 헌정 사상 최초다. 범(汎)야권은 이태원 참사 책임을 탄핵 사유로 명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안을 기각했다.
직후 여야는 “참사를 정쟁 수단으로 삼았다”(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 “그래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박광온 전 민주당 원내대표)며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21대 국회는 판사(임성근), 검사(안동완·손준성·이정섭) 탄핵안을 헌정사 처음으로 가결하기도 했다.
21대 국회는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5월부터 현재까지 24명의 장관급 인사가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 강행됐다. 윤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남은 만큼 문재인 정부의 임명 강행 숫자(33명)를 추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는 국무위원 후보자의 능력·자질 문제 외에도, 청문회가 정쟁의 도구가 된 측면이 강하다. 여권 관계자는 “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을 병기할 수 있는데도 야당은 무작정 반대했고 여당도 이를 잘 풀어내지 못했다”고 했다.
국회의원 100명이 수사·재판
21대 국회는 도덕성도 낙제점이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통계에 따르면 4·10 총선 직전인 1월 말 기준 국회의원(21대 당선인 300명) 중 고발·수사·기소·재판을 받는 이는 총 100명(중복제외·무죄확정포함)이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중 3분의 1이 피의자·피고인이라는 의미다. 혐의도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28명, 부정부패 35명 등이었다.
그럼에도 21대 국회에서 당선상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잃은 이는 고작 8명에 불과했다. 19대 22명, 20대 14명보다 적었다. 수사·재판받는 의원 상당수가 4년 임기를 채운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준법의식을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사법부 판단 전에 국회 차원에서 자정 기능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법안 1건당 비용은 1억700만원... 국회 신뢰도는 최하위
「 2020년 문을 연 21대 국회에서 19일까지 통과된 법안은 총 9454건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투입된 세비를 따졌을 때 법안 1건당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안 1건당 약 1억789만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국회의원 300명의 세비 470억원과 9명의 보좌진 급여, 각종 보조금 등을 합치면 4년간 21대 국회의원이 쓴 비용은 약 1조200억원에 달한다. 이를 법안당 소요 비용으로 계산하면 이 같은 금액이 나온다.
우선 국회의원의 연봉은 올해 기준 1억5690만원이다. 2020년 1억5187만원, 2021년 1억5280만원, 2022·2023년 1억5426만원으로 매년 기획재정부가 정한 공무원 보수인상률 내에서 소폭의 인상 또는 동결이 이뤄졌다. 의원 1명당 최대 9명까지 둘 수 있는 보좌진의 총 연봉은 올해 기준 5억9999만원이다.
인건비 외에 사무실 운영 지원금, 정책개발비 등의 경비 지원도 1년에 9714만~1억3646만원 가량 소요된다. 국회사무처의 ‘2024 의정활동 지원 안내서’에 따르면 올해 국회의원 지원 예산으로 316억원이 책정됐다. 사무실 운영지원비, 차량 유지비와 공무수행출장비, 정책개발비·자료 발송료 등이 지원 경비에 포함된다. 비례대표와 달리 정책 홍보물과 자료 발송이 가능한 지역구 의원에게 일부 지원 경비가 추가된다. 결국 의원 1명이 활동하는 데 1년에 약 8억5000만원이, 300명 전체로 추산하면 최대 2550억원이 든다.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비판이 매번 반복되면서 국회의원 세비 삭감은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IMF 사태 직후인 1998년과 99년 세비를 깎은 경우 이외에 세비 삭감은 없었다. 반면 통계청의 사회지표 조사에서 국회 신뢰도는 2021년 34.4%, 2022년 24.1%, 지난해 24.7% 등 전체 16개 기관 중 매번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은 우리 국민 중위소득(4인가족 기준 월 573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만 세비로 받자”고 제안했지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세비 삭감 목소리는 사라졌다. 과거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세비 30% 삭감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작 국회 문턱을 넘기진 못했다.
」
김효성·이창훈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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