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결정은 의·정 대화의 기회…"내후년도 정원 재논의가 현실적" [view]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가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정부 손을 들어주면서 학교별 정원 확정이 임박했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19일 브리핑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내년도 대입 계획 변경 등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 대학이 조속히 학칙을 개정해달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여전히 "증원 백지화"로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법 결정을 곱씹어보고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 막판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재판부는 정부의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다소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증원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인정했다. 그리고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의 파업 등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고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권용진(의사·법학자)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이제는 2025학년도 증원은 중단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의료계가 법원 결정을 일단 받아들이고 2026년도 정원을 재논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제안한다.
고법 결정으로 증원의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의료 현장 혼란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당장 20일 문제가 생긴다. 전공의가 진료 이탈한지 석 달 되면서 이날을 기점으로 '수련 불인정(1년)' 전공의가 줄줄이 나오게 된다. 이에 따라 4년차(일부 진료과는 3년) 전공의들이 내년 1월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돼 내년 초 3000여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지 못하게 된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건복지부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수련기간 불인정의 공백기간이 석 달이지만 휴가·휴직·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되면 일부 조정(추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 달 넘긴 전공의라고 해도 일정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수련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또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면제 가능성까지 내비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9일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한) 전공의 행정처분 여부는 행동 변화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보건당국이 처분의 수위·시점 등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 복귀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19일 기준으로 진료 현장에 남았거나 복귀한 전공의는 600여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교수는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17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의협은 "(사법부 결정으로) 전공의 복귀가 더 요원해졌다"며 사태 장기화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전공의 지원에 나섰다. 의협은 22일 의대교수·시도의사회장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전의비)는 23일 총회를 연다.
정부 조사를 보면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이 72.4%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높다. 그래도 정책 추진 과정은 정교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2035년 의사 1만명을 확충하기 위해 의대 교육과정이 6년임을 고려할 때 2025학년도부터 매년 2000명을 증원한다는 산술적 계산을 한 것일뿐 2000명의 직접적 근거가 특별한 게 없다"며 "근거는 다소 미흡하지만 의사 인력이 부족해진다는 점은 일응(일단) 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절대로 취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반부는 이어 "설령 정부의 의료정책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 생명과 건강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이를 위한 국가의 존재 이유를 고려할 때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의사가 파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설령 의료계 주장에 경청할 부분이 있다하다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정부를 향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대학 존중이다. 재판부는 "거점국립대학 총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 정원을 조정한 것처럼 앞으로도 매년 대학 측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하도록 자체적으로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대학이 사정에 맞게 정원을 정하면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19일 현재 17개 대학이 의대 정원 관련 학칙 개정을 앞두고 있다.
전공의 복귀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사법부가 공공복리를 강조하면서 증원 정책을 정당화해줬다. 이 상태에서 증원 정책 자체를 철회할 수 없다"며 "의사들이 복귀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본다. 전공의들이 복귀를 두고 눈치보기를 한다는데, 일부라도 복귀하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전공의 시험 시기를 늦춰주고 구제하려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 5월 말, 6월 초를 넘기면 구제하려 해도 안 될 수 있다"고 복귀를 촉구했다.
권용진 교수는 "내년 정원은 인정하고 내후년은 다시 논의하면 좋겠다. 필수의료 패키지는 대화테이블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 의료개혁은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여야 합의로 의료개혁위원회를 법제화해서 수년에 걸쳐 논의하자"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채혜선ㆍ문상혁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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