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부 손 다 들어준 건 아니다…증원 통보, 공권력 행사 인정

김정연 2024. 5.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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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의대 증원을 중단시켜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각하한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은 앞서 행정법원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면서도 구체적 판단은 다소 다르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의 관련 사건들에선 모두 의대 증원 발표를 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기관의 ‘처분’(행정기관의 공권력 행사)으로 보기는 어렵고, 대학의 장(대학총장)만이 소송 당사자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이 두 가지 쟁점에서 모두 다른 판단을 내놨다.


①2월 6일 증원 발표 “핵심적 공권력 행사” 처분성 첫 인정


서울고법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는 복지부 장관의 2월 6일 발표에 대해 처음으로 “행정소송의 대상인 ‘처분’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며 “(2월 6일의 증원 발표는) 의대 정원의 증원‧배정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복지부 장관이 통보한 2000명 증원을 교육부 장관이 그대로 수용하고, 의대생 등이 교육부의 ‘배정’이 아닌 복지부의 ‘2000명 증원’의 위법성을 다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1심에선 대학의 정원 배분 이전의 ‘2000명 증원’ 결정에 대해선 소송으로 다툴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서울고법의 판단에 따르면 2000명 증원 자체를 문제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②“의대생 학습권 침해…신청인 적격 인정” 첫 판단


서울고법은 학습권 침해를 인정하면서 의대생들에게 소송 당사자의 지위를 인정했다. 현재 1년에 약 3000명인 의대 정원에 2000명을 더하고, 여기다 재학생들의 유급‧휴학을 더하면 내년에는 한 학년에 8000명이 함께 교육받게 돼 ‘의대 교육 파행’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존 교육 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제한받거나 열악해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다면, 헌법 31조에서 정한 ‘교육받을 권리’가 구체적으로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1심은 대학의 장이 소송 당사자라고 했지만, 서울고법은 “대학에 이득이 되는(수익적인) 처분이라, 대학의 장이 여기에 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또는 장래 의사라는 지위로는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교수들의 ‘교육을 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으며, 전공의들은 증원된 의대에서 교육‧수련을 받을 일이 없고, 수험생들은 의대 입학이 확정되지도 않았고 증원은 수험생에게 오히려 이익인 상황이라 소송 당사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000명 증원’ 명백한 적법도, 위법도 아냐


서울고법은 본안 소송에서 명백히 한쪽의 승소나 패소가 예상되면 그 결과와 다른 집행정지 인용·기각 결정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승소‧패소가 명백히 갈릴지 가늠했으나, 무게추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2000명 증원 처분’의 적법성을 다툴 경우 명백하게 적법하다거나, 명백한 위법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2025년 2000명 증원’ 결정은 ‘2035년까지 의사 1만명 부족’이라는 보고서에서 도출된 숫자일 뿐 결정 과정이 명확하지 않고, ‘정책적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명백히 적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서울고법은 “2000명이라는 숫자는 2월 6일 정부 발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고 ‘2000명 증원 결정’이 명백히 위법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필수‧지역의료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고, 의사 재배치만으로 해결을 단정하기 어려워서다. 또 정부가 증원을 검토해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점도 고려했다. ‘2000명’ 수치를 도출하는 과정은 다소 미흡하지만 “산술적 접근이 반드시 타당하진 않더라도 절대로 취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집행정지 여부에 따라 양측이 주장하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와 ‘공공복리에 미칠 중대한 영향’을 놓고 비교한 끝에 “집행정지의 사회적 불이익이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대생들에겐 상당한 교육 차질 우려가 있지만 현재 단계에선 공공복리를 옹호할 필요도 있으며, 이 사건과 관련해 발생한 의료 혼란을 해결하는 데에 어느 쪽이 나을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집행정지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도 했다.

「 ※ 법원은 2023년 2월 9일부터 2024년 1월 24일까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 총 19차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2차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의사인력 전문회의 총 9차례 등이 열렸는데 이 중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논의된 것은 2023년 10월 17일 의사인력전문위원회 5차 회의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당시 위원 12명 중 참석 10명(서면참석 1명)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①1000명 증원
②1000명 증원(연간 100~300명 범위로 몇 년간 점진적으로)
③1000명 증원
④1단계 351명, 2단계 각 의대 수용역량 내에서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증원
⑤476명 증원
⑥의대 수용역량 내 가능한 많은 증원
⑦5000명이든 1만명이든 최대한 증원
⑧의견 제시 없음(발제문에선 ‘6000명까지 증원’ 의견이나, 논의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위원별 증원 숫자 제시는 맞지 않음)
⑨상당한 규모 증원
⑩(서면참석) 최소 300명~최대 1000명 증원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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