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우원식 선출이 국민의힘에 시사하는 것
방향은 과거 구호를 뒤집은
‘민심이 당심, 당심이 윤심’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의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선출된 결과는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해줬다. 유력 의장 후보로 거론됐던 추미애 당선인이 한 ‘명심(明心·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당심(黨心)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말을 민주당 의원들조차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명심이 당심’이라는 말은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당의 핵심 가치나 정책 노선이 아닌 당내 선거를 두고 권력자의 의중이 마치 당의 지침처럼 거론되는 건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3선 원내대표가 5선, 6선 중진들을 만나 당대표의 뜻을 전하고 결단을 촉구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괴기스럽다.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란 말까지 나왔던 추 당선인의 패배는 추 당선인 개인 캐릭터의 영향도 있겠지만, 민주당 내에서조차 의장 후보 경선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의원들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친명계의 위세에 대해 당내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한다는 걸 민주당은 어쨌든 보여줬다. 그런데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뭘 보여줬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중 누가 더 총선 참패에 잘못이 크냐 다투는 모습이나 ‘지난 총선(21대)보다 5석 더 얻었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라는 ‘정신승리’ 모습만 보였다. 한 국민의힘 인사는 우 의원의 예상 밖 승리에 오히려 “이제 우리 당 어떡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권 내에서는 내심 추 당선인이 국회의장이 된 뒤에도 거침없이 폭주할 경우 집 나간 민심이 다시 돌아올 거란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는데, 이 기대마저 꺾인 셈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우 의원의 후보 선출 다음 날 “명심으로 민심을 거스르고 ‘개딸’에 의지하여 국회의장까지 좌지우지하려 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내려졌다”(성일종 사무총장)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
‘명심이 당심, 당심이 민심’이란 말은 사실 1년여 전 국민의힘에서 나온 말을 주어만 바꾼 것이다. 당시 친윤(친윤석열)계는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부 선출 규정을 당원 투표 100%로 바꾸는 과정에서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에 따라 바꾼 전당대회 선출 규정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인다면 전당대회 룰 개정부터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경선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완전 별개의 일이지만 두 사안의 처리 향방은 국민이 정당에 대해 갖는 인식을 결정한다.
사실 전당대회 룰 문제에 있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해외 정당의 사례를 봐도 당원이 지도부를 선출하거나,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막기 위해 민심을 절반 이상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 모두 설득력이 있다. 지도부 선출 방식 그 자체보다는 정당의 인물이나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다만 분명한 건 전당대회 룰에 관해 ‘민심을 반영하느냐, 아니냐’로 프레임이 잡힌 상황에서 여당이 현행 방식을 유지키로 한다면 ‘민심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 갈 길 간다’는 메시지로 읽힐 것이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어질 거대 야당의 독주 앞에 소수 여당이 내세울 카드는 민심에 호소하는 여론전 외에는 마땅치 않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민심에 귀 닫는 제스처를 하는 건 바보짓이다.
궁극적으로 위기에 빠진 여권이 가야 할 방향은 과거 구호를 뒤집어 ‘민심이 당심, 당심이 윤심’이다.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방향을 지키려고 애를 쓸 때 그나마 엄혹한 여소야대 정국에서 ‘선방’할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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