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서이초 300일 유감
지난해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부모로부터 “딸 별일 없으려면 편지를 끝까지 읽는 게 좋을 것”이라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 교사가 반 아이들 일부와 찍은 사진에 자기 딸이 빠진데 불만을 품고 수차례 마찰을 빚어 온 학부모였다. 학교 교권위원회를 거쳐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에 대한 형사고발을 결정했으나 3개월 넘게 고발을 늦추는 바람에 교사는 속수무책 악성 민원을 감수해야 했다.
경기도의 초등학교 교사 B씨도 자녀의 학폭 징계 처분에 항의하는 가해 학생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렸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이들 부모를 포함해 악성 민원 학부모들을 협박 혐의로 고발한 사례는 올 들어 세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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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권 4법 등 제도 개선에도 한계
교권 침해는 여전…입법 보완 필요
학생인권조례 폐지, 또 다른 불씨
」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300여 일. 당시 교권침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며 교권 4법이 통과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이뤄졌지만, 아직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대부분 법이 ‘노력한다’ ‘할 수 있다’ 등의 문구로 강제성이 없는 데다 사건 초기 악성 민원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날로 흐려지고 있다. 며칠 전 스승의 날이 있었지만, 교사들의 사기는 바닥이다. 최근 한국교총의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택하겠다’는 응답은 10명 중 2명이 채 안 됐다(19.7%). 교사노조의 또 다른 설문에서 ‘교직에 만족한다’는 답은 22.7%, ‘1년 새 이직을 고려해 본 적 있다’는 답은 63.2%였다. 교사들은 아동학대처벌법 중 ‘정서적 학대’ 조항의 애매모호한 적용을 손보고, 아동학대 악성 신고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마련하는 등 추후 입법과 모니터링을 통한 근본적 변화를 주문한다.
반면에 일각에서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지목해 온 학생인권조례는 속속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달 충남과 서울시가 전격 폐지한 데 이어, 경기도와 광주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16일 이를 대신해 학생·교사·학부모를 포함하는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조례’ 시행에 들어갔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재의결을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충남교육청도 대법원 제소를 준비 중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일방적으로 강조해 문제라면 개정하거나 보완하면 될 일을 굳이 폐지를 택한 것은 이 사안이 다분히 진보·보수를 가르는 정치적 이슈로 다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보 교육감들은 아예 학생인권법 제정 카드를 들고나와 앞으로 이를 둘러싼 뜨거운 사회적 갈등도 예상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학생인권은 교권과 대립하기보다 상호보완적이다. 학생인권이 존중되면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는 수준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새로 만든 ‘학교 구성원 조례’를 통해 과거 ‘학생인권옹호관’에 해당하는 ‘교육갈등관리위원회’를 두게 했으나, 인권침해 문제를 관리가 가능한 갈등이나 분쟁으로 본다는 점에서 인권의식의 퇴보란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한편 학생인권조례 폐지 배후에는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명기한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일각의 반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송두환 위원장은 “일부 지자체가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 조례를 폐지했으나, 이는 성소수자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정작 많은 교사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비틀린 ‘내 새끼 지상주의’에 빠진 진상 학부모들, 그리고 무한 경쟁과 공교육 위기 상황 자체일 텐데, 교권 회복이 학생인권조례의 역사적 상징성을 깨는 방향이어야 했는지, 그게 과연 현장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뜻이었는지 의문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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