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뱅 이미 이사회 장악… 명분보다 실리 챙기기?
라인 성장통, 네이버엔 아픈 기억
지분정리 가닥… 선긋기 작업 진행
네이버의 야심작이었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라인은 국내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톡의 아성을 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약 2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글로벌 메신저로 거듭났다. 그러나 확장성과 별개로 라인은 적자 늪에서 허덕이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네이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 잡으며 돌파구를 찾았지만 ‘공동경영’이라는 네이버의 구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분 매각 계획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자국의 인공지능(AI)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려는 일본이 이른바 ‘라인 사태’를 일으키며 네이버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한국 정부가 등판하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오는 7월 이후 지분 매각 협상이 다시 구체화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 라인은 메신저뿐 아니라 쇼핑·금융·오락까지 가능한 핵심 생활 플랫폼이다. 라인은 2011년 6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재팬이 개발했다. 그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기지국 파괴로 통신이 마비된 후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지시한 결과물이다. 현재 라인은 일본 국민 10명 중 8명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로 불린다. 이외에도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 108개국에서 약 2억명이 접속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름값에 비해 성적표는 초라했다. 2014년 초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190억 달러(약 20조원)에 인수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동남아 시장까지 섭렵하고 있는 라인의 몸값도 덩달아 뛰었다. 일찌감치 소프트뱅크가 일본 증시 입성을 준비하던 라인에 ‘프리-IPO 투자’(상장을 앞두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조기에 매입)를 제안했지만 네이버는 이를 거절했다. 상장 전까지 몸값을 더 불릴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메신저 앱 가치가 하락하면서 라인은 2016년 시가총액 9조원 수준으로 상장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라인은 네이버 입장에서는 ‘돈 먹는 하마’였다. 라인이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던 2018년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조4905억원과 221억원에 그쳤다. 2019년엔 당기순이익이 8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18년 라인파이낸셜을 설립해 ‘라인페이’를 통해 간편결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라인페이의 당기순손실은 2018년 548억원에서 2019년엔 2203억원까지 불어났다.
재정적으로 모회사에 의존하다보니 네이버의 재무 상태도 악화됐다.
2023년 라인과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자본이 부족해 출혈 경쟁이 부담스러운 라인과 청년층 유입에 어려움을 겪던 야후재팬의 당시 상황이 맞물린 셈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 대주주인 A홀딩스의 지분율을 50%씩 갖고 있지만 사실상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들고 있다. 라인야후 자회사인 라인플러스의 사업보고서에는 최상위 지배기업으로 소프트뱅크가 명시돼 있다. 경영 통합 후 일본 정치권이 국적 문제를 물고 늘어지자 소프트뱅크의 요구를 들어준 결과다. 이사회 의결권도 소프트뱅크 3명, 네이버 2명으로 할당돼 있다.
네이버는 야후재팬의 소프트뱅크 계열 회사들에 대해서도 네이버의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소프트뱅크의 비협조 속에 이 같은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지난 10일 "네이버가 자사 기술력과 노하우를 라인야후에 접목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네이버는 꽤 오래 전부터 지분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약 52만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총무성은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체제 개선을 요구하면서 이 사태가 불거졌다.
사실상 라인야후 경영권이 소프트뱅크에 있음에도 일본이 네이버 지분 축소를 고집하는 것은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지우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결산설명회에서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경우의 장점에 대해 "100%를 사면 여러가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만 51대 49 정도라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분을 충분히 매입하고 싶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소프트뱅크도 AI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자국의 글로벌 IT 플랫폼이 필요한 상황이다. 라인 사태 논란이 커지던 지난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손정의 회장의 AI 혁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라인 사태가 발발한 후 네이버가 모호한 입장을 내놨던 것도 이미 지분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라인플러스 내부에서도 네이버보다는 소프트뱅크와 라인야후에 회사 정체성을 더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은정 라인플러스 대표는 지난 14일 라인플러스 전 직원 대상 온라인 간담회에서 "우리는 네이버가 아닌 라인 직원"이라고 밝혔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CEO도 이 자리에서 "직원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통상 고용 안정성에 대한 언급은 최대주주 변경이 현실화한 단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간 지분 매각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진전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지분 매각 협상은 장기전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지난 14일 대통령실은 라인야후가 오는 7월 일본 총무성에 제출할 행정지도 관련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 내용이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등판하며 네이버 지분 매각 방정식은 복잡해졌다. 다만 네이버 지분 조정은 '없던 일'로 된 것은 아니다. 총무성이 제시한 보고서 제출일까지 소프트뱅크와의 지분 협상을 마무리 짓기 어렵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오는 7월 이후 지분 매각 협상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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