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새로운 부모상이 필요한 시대
새로운 부모상(父母像)이 필요한 시대다. 지난 17일 아들의 100일 잔치를 성공리에 마친 뒤 뉴스를 훑어보다 같은 날 열린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의 청문회 발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딸에게 재개발 지역 땅을 편법 증여한 의혹을 두고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아파트 하나 정도는 마련해줘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라고 말했다. 소박하게 대박을 노린 투자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나중에 장성한 내 아들이 우연히라도 이 기사를 보고 “아버지는 왜 이렇게 소박하지 못하세요”라고 물을까 겁이 났다.
법을 어기진 않았으니 그들의 세계에선 소탈한 편에 속하는 걸까. 지난달 감사원이 공개한 선거관리위원회 채용 비리 실태에는 자녀를 합격시킨 혐의를 받는 고위직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자녀 중 한명은 세자로 불렸다. 알아서 시험을 보고 직장을 얻은 나에게, 아버지는 “고개 숙일 일을 만들지 않아 고마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왜 당연한 일을 두고 뿌듯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부모상이 필요한 이유는 위와 같은 부모와 자식 관계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이들에게 박탈감을 안긴다는 데 있다. 부모상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저출생도 해결되기 어렵다. 힘이 없어 해주지 못하니 아예 낳지 않거나, 다자녀 가족은 부족한 지원 속에 뒤처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식의 화수분이 되기엔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세대 자산은 아파트 한 채뿐이다. 그들이 물러나고 뒤를 잇는 3040세대는 빚에 허덕이고 있다. 자식의 교육과 취업과 결혼에 이어, 손주·손녀까지 챙겨주는 (조)부모의 원스톱 서비스는 한쪽의 일방적 헌신을 요구한다.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부모의 희생에 최근 법원도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불효자에게 유산 일부를 유류분(遺留分)으로 보장한 민법 조항이 상식에 반해 헌법과 어긋난다고 했다. 유산도 효도의 크기에 따라 나눠야 한다는 뜻이다. 말 못하고 끙끙 앓던 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거다. 이는 부모상뿐 아니라 자식상도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 아닐까. 일방적인 기대를 접는 것에서 시작해, 부양은 어렵더라도 부모를 100세 시대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
소박한 아파트 한 채는 못 해주겠지만, 이제 갓 100일을 넘긴 내 아들이 인생의 중대한 길목에 서 있을 때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든든한 아버지가 되려 한다. 나와 내 아내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그 이상 해주지 못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식은 그런 부모를 탓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 관계 아닐까. 그렇게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성장해가는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생각한다.
박태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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