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호텔 샤토 로얄 #호텔미감

이경진 2024. 5.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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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퍼러리 아트를 모티프로 100여 점이 넘는 작품으로 채워진 디자인 호텔.

샤토 로얄(Cha˄teau Royal)은 2022년 문을 연 디자인 호텔이다. 베를린 아티스트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한 레스토랑 ‘그릴 로얄’의 슈테판 란트베어(Stephan Landwehr)가 소유주이며, 샤토 로얄은 자연스럽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모티프로 삼았다. “예술이 없는 방은 상상할 수 없어요”라는 란트베어답게 호텔은 그의 아티스트 크루들의 100여 점이 넘는 작품으로 채워졌다. 그런 면모는 입구에서부터 확인된다.

호텔 입구 도로에 놓인 알리차 크바데의 청동 조각 작품 ‘유령의 초상화’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레고어 힐데브란트의 정적인 기둥과 만난다. 시몬 후지와라의 맹랑한 페인팅, 코지마 폰 보닌의 거대한 콜라주, 만들라 로이터의 브론즈 피규어가 아늑한 바와 레스토랑으로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구석구석 공간의 맥락이 잘 반영된 흐름이 자연스럽다. 한 마디로 절묘함과 무심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거기에 디자이너 이리나 크로마이어(Irina Kromayer)의 터치가 더해져 붉은 커튼이나 초록 벨벳 의자 같은 파리적인 요소도 키치함을 피해갔다.

“레스토랑 안쪽의 커다란 램프는 누구의 작품인가요?” 직원은 주저 없이 “클라라 린덴일 겁니다”라고 답한다. 아티스트들에 관한 질문을 이어가니 그는 두툼한 파일 한 권을 건넸다. 호텔에 놓인 모든 작품의 위치와 아티스트 이름을 망라한 아카이브였다. 그는 “원한다면 내일 오전에 룸 투어를 해드릴 수 있어요. 몇 개의 흥미로운 방이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제 아트와 호텔의 공생은 보편적인 흐름이지만, 샤토 로얄의 방식은 좀 더 진보적이다. 예술을 말하기보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에 가깝다. 아트 컨셉트를 소리 높여 드러내지 않고 마케팅 요소로 끌어들이기조차 거부하는 것 같았다. 묵직하고 낡은 아티스트 파일을 통째로 건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작정했다면 아이패드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거나 객실마다 아트 브로셔를 비치하는 방식을 택했을 텐데.

다음날 아침, 여배우 노에미 메를랑을 닮은 직원을 따라 룸 투어를 시작했다. 그녀가 408호 문을 열었다. “알리차 크바데 룸이에요. 그녀는 특히 샤토 로얄 프로젝트를 즐거워했어요.” 알리차 크바데는 돌과 거울, 시계 같은 재료로 낯선 상황을 만들어내 사물과 세상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음을 질문하는 아티스트다. 빈 객실이지만 어쩐지 타인의 방을 침범한 것 같아 조심스럽다.

푸른 벽에는 작동을 멈춘 시계가 걸려 있고, 천장에는 난데없이 작은 열쇠 꾸러미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기이한 의자 하나! 의자의 네 다리 아래 구 형태의 행성이 간신히 끼여 있다. 앉아야 할지 말아야 말지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창문에는 검은 돌 조각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재료의 물리성에 예술가의 책략이 더해진 풍경이다. 호텔에서 경험하는 예술은 갤러리나 뮤지엄보다 한결 친밀하고 우연적이다. 호텔이라는 시공간에서 예술이 또 다른 차원의 우회적인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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