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라니가 천막 옆에 똥을 쌌다, 기뻤다

박은영 2024. 5. 19.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종보 천막 소식 19일-20일차] 금강 자연성 회복 위한 솟대세우기... "금강이 낙동강이다"

[박은영 기자]

▲ 박새의 둥지 천막농성장 옆 한두리대교에 자리잡은 박새둥지
ⓒ 대전충남녹색연합
 
'부스럭 부스럭~ 사사사삭~'

등 뒤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에 숨을 죽였다. 천막 앞 '흘러라 강물아'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 뒤쪽 수풀 속으로 스윽 지나가는 생명체. '오솔길'의 장본인, '오소리'다. 입에 무엇을 물고는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제 갈 길을 터벅 터벅 걸어간다. 마치 이곳은 '내 땅!'이라고 말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풀숲으로 들어갔다.

농성천막 앞에 앉아 고개를 들면 또 다른 집이 있다. 거대한 한두리대교 교각의 10m 남짓 높이에 뚫린 아이들 손바닥만한 구멍. 박새의 둥지다. 입에 먹이를 들고 수시로 드나드는데, 20여일 전부터 자기 둥지 밑에서 녹색 큰 둥지를 튼 농성천막이 처음엔 낯설었나 보다. 천막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머리 위, 테이블 위에 똥을 싸고 둥지로 들어가기도 했는 데 지금은 뜸해졌다.

장화부대, 삑삑도요, 오소리와 친구가 된다는 건
 
▲ 천막농성장 옆 고라니 흔적 밤에 머물다간 흔적, 고라니똥
ⓒ 대전충남녹색연합
 
어디 이뿐인가. 며칠 전 고라니는 천막 옆에 똥을 쌌다. 기뻤다. 천막 안에서 잠을 자고 농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다는 뜻이다. 천막 앞, 금강의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조그만 웅덩이 앞에도 농성 초기에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나타나지 않았던 꼬마물떼새, 삑삑도요, 할미새들이 태연하게 걸어 다닌다. 녀석들은 사람이 있을 때에도 천막 근처를 배회하기도 한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둘 사이는 친구다. 지난 16일 천막을 함께 지켜준 낙동강 '장화부대'도 그랬다. 천막에 내려올 때부터 장화를 신고 터벅터벅 나타난 낙동강 활동가들. '왜 장화들을 신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현장에 왔으니 봐야지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웃었다.
 
▲ 낙동강 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강이라는 현장을 공유한 활동가들
ⓒ 김미선
 
이날 '낙동강네트워크는 "금강이 낙동강이다. 금강이 흘러야 낙동강이 산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마쳤고, 여섯명이나 남아서 농성천막의 밤을 지켰다. 세종보 300m 지점의 하천부지에 녹색천막이 둥지를 튼 이후 최대 숙박 인원이었다. 이들도 하룻밤을 천막에서 지새운 뒤 금강의 야생과 친구가 되었다.
슬기로운 천막생활… 희망을 담아 세운 솟대
 
▲ 희망을 담아 세운 솟대 강의 자연성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운 솟대
ⓒ 대전충남녹색연합
   
"강에 돌아오는 새들이 더 많아지기를."

지난 18일부터 농성장에서 '슬기로운 천막생활'이 시작됐다.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수장될지도 모를 곳에 솟대를 세운다. 하천부지로 내려오면 한눈에 보이는 웅덩이 위쪽에 5개의 솟대를 세웠다. 새들의 얼굴이 강을 바라보도록 모래에 고정했다. 강을 바라보는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물떼새들의 친구가 더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모래 위에 솟대를 세우는 일이 쉽진 않았다. 자주 새를 보러오던 고등학생 친구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삽질을 했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힘들지만 함께하는 작업의 즐거움이다. 20여일간의 농성에도 지치지 않는 건 힘들어도 함께 해주는 이런 연대의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말 간절히 바라며 세워낸 건 '희망'이 아니었을까. 강을 지켜내고 싶다는 희망, 물떼새들이 더 많이 우리와 함께 지냈으면 하는 희망들을 솟대를 심는 모래에 꾹꾹 눌러 담아 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동강이 금강이고 설악산이 보문산이다
 
▲ 금강이 낙동강, 낙동강이 금강 강으로 연결된 생명으로 일심동체가 된다
ⓒ 임도훈
 
하천부지의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온 우리는 어떤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 16일 낙동강네트워크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을 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이들이 금강의 세종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달려온 것은 "금강이 살아야, 낙동강도 살고 낙동강 주민들도 산다"는 문제인식 때문이었다. 금강의 둑이 무너지면 낙동강은 영영 회복될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가령, 4대강 16개 보 중 8개의 보가 자리잡은 낙동강은 1300만 영남 지역주민들의 식수원이자 농업용수다. 수돗물에서도 간에 치명적인 독성 마이크로시스틴이 발견되고, 인근 아파트 거실에도 에어로졸 형태로 독성이 퍼져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보 개방조차 못하고 있다. 7년여 동안 열려잇던 세종보가 이번에 다시 닫히면 낙동강 보 개방도 어렵게 된다는 생각에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목소리를 낸 것이다.
 
▲ 보문산 이대로 거리미사 중 천주교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주최로 보문산 개발 반대 거리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 최인섭
 
어디 금강과 낙동강뿐일까. 대전에는 높이 457m의 보문산이 있다. 드물게 도심 속에 잘 발달된 혼합림으로 삵, 노란목도리담비, 하늘다람쥐 등이 서식하고 있는 소중한 산이다. 지금은 구도심이지만, 대전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산이다. 그런 '보물산' 보문산에 케이블카, 고층타워, 워터파크, 숙박시설을 지어서 관광활성화를 하겠다는 계획을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다.

이런 작은 산조차 케이블카 같은 철지난 유행으로 지자체장에 의해 난도질 당한다면, 우리나라의 지역 곳곳의 산들이 개발될 것이다. 우리가 보문산을 지키는 것은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고 설악산 지키기 운동에 연대하는 것이다. "금강이 낙동강이고, 낙동강이 금강"이듯, "보문산이 설악산이고, 설악산이 보문산"이다. 또한 '금강이 보문산'이다. 이곳 금강을 지키는 것이 낙동강을 지키는 일이고, 우리 강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산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 역할 잃은 환경부… 물정책 정상화로 폭주 막아내야   금강 천막에서도 '보문산 이대로'를 외친다. 우리나라 환경보전의 보루 역할을 해야할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명체의 삶터를 수장시키려고 하고 있고, 온갖 규제를 해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민과 생명의 편이 아니라 기업과 자본의 편에 서서 생명을 포기하고 있는 게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다.

이를 막으려고 세운 농성천막으로 낙동강에서, 영산강에서, 새만금에서, 설악산에서, 지리산에서, 노조와 세종시민들, 아이들, 신자들이 달려오는 연대의 발길은 이번엔 무소불위의 '환경파괴부'에 진압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식이다. 지난 총선에서 철저하게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세종보 전선에서부터 막아내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친 진지는 한 평 남짓한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30여년 전으로 퇴행시킨 윤석열 정부의 물 정책을 정상화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 세종보 재가동 중단 천막농성장 오늘도 천막농성장 불은 꺼지지 않는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천막이 있어 내려와 봤어요. 힘 내십시오."

하천변에서 운동하던 한 세종시민이 내려와 인사했다. 천막을 보고 종종 내려오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 혹시 세종보 재가동을 막으려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런 발길이 많아질수록, 그리하여 생각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우리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오소리와 고라니, 박새와 삑삑도요와 우리가 그러했듯이.

흐르는 금강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어서, 금강으로 오세요."

[관련 기사]
- 새벽 금강 탐사에서 만난 엄마 까투리의 지극한 모성 https://omn.kr/28prk
- "금강이 흘러야 낙동강도 산다"... 낙동강-금강의 연대 선언 https://omn.kr/28p2l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