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에 치우친 의료자문, 균형 바로 잡아야"
[이영광 기자]
▲ MBC <PD수첩>의 한 장면 |
ⓒ MBC |
한 아이가 병원에서 가와사키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마침 보험 보장항목에 가와사키병이 포함돼 있어서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에서는 의료자문을 동의해야 한다길래 동의했더니 보험사가 의료자문 받은 뒤 가와사키병이 아니라 보험료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까?
지난 14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불공정 게임-보험사와 의료자문'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두 개 병원에서 가와사키병을 진단 받은 조수진(가명) 씨 딸 이유현(가명) 사례와 발달 지연 아동 사례를 통해 의료자문의 문제점 짚었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해당회차 연출한 이규찬 PD를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어요. 막상 취재해 보니 의료자문 관련해서는 훨씬 더 많은 사례와 문제들이 있는 것 같고 추가로 취재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제작하다 보니 충분히 깊게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 보험사의 의료자문 문제는 어떻게 취재하셨어요?
"발달 지연 아동 보험금 부지급 논란이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2020년에도 <PD수첩>에서 의료자문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한 이슈가 생겨서 찾아보니 의료자문제도가 여전히 그때와 비슷한 문제가 있고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더라고요. 과연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고 뭐가 문제일까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취재 시작하게 됐어요."
- 취재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나요?
"발달 지연 아동 부모님들을 먼저 만나봤어요. 사실 작년부터 발달 지연 아동 관련해서는 제보가 꽤 왔던 상황이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 후에 업계 사람들이나 전문가들 통해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 일인지 물어봤어요."
- 암보험 같은 거 많이 들잖아요. 암보험은 의료자문 안 받나요?
"병이라고 해서 무조건 의료 자문 받는다는 건 아니더라고요. 예전에도 암과 관련된 보험 이슈들이 있었잖아요. 어떤 기준으로 의료자문 대상을 선정하는지부터가 사실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의료자문 대상을 선정하는 것부터 보험사의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요."
- 기준이 없나요?
"내부의 기준이 있을까 싶어서 발달 지연 관련해 보험사에 물어봤을 때는 종합적인 판단이라고 했어요."
-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치료 기간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의료자문하는 건 아니라고 했어요. 대상자의 연령, 검사 결과, 치료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했어요. 사실 의학적 부분은 개개인마다 그 상황이 달라서 일관된 기준으로 말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말은 그리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판단은 보험사에서 하고요."
-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게 병원에서 진단서 받아 제출하잖아요. 그런데 왜 거기 의료 자문이 끼어드냐는 거죠.
"보험사 입장에서 그 진단이 적절한 건지 판단할 필요는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보험금을 청구하는데 만약 가입자 측에서 의도적으로 과잉 진단 받아 서류를 제출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보험료가 인상되고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기에 의료자문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용되거나 악용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 이야기에요."
- 암 보험을 예로 얘기해 보죠.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진단서 제출했는데 보험사는 못 믿겠다는 거잖아요. 백번 양보해서 의사와 환자가 짜고 진단서 발급했다고 쳐요. 근데 방송 보니 여러 병원에서 같은 진단했다고 나오던데 그걸 다 짜고 할 순 없잖아요.
"맞아요. 실제로 저희가 만난 사례자도 여러 병원에서 진단서와 검사 결과서를 냈는데도 여전히 보험사 측에서는 의료자문을 해야 한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게 그냥 뭉뚱그려서 어떻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거예요. 복잡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보도가 되는 사안을 보면 과연 의료자문이 본래 취지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 3살인 이유현(가명)의 엄마인 조수진(가명) 씨 이야기로 시작했잖아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조수진 씨 사례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특이한 경우예요. 보통은 의료자문 결과가 나오면 당사자는 그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근데 조수진 씨는 의료자문 회신서에 적힌 같은 병원에 가서 원래 주치의의 판단과 똑같은 가와사키병 인정받은 거죠. 같은 병원, 같은 기록인데 보험사의 의료자문과는 다른 판단이 나온 거잖아요.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소비자가 있을까요?"
- 왜 의료자문 공개가 안 되는 거예요? 누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냈는지 알 수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보험사 측은 자문의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해요. 만약에 의사의 이름을 공개할 경우 의료자문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은 보험 가입자가 자문 의사에게 민원을 넣거나 위해를 가한다는 거예요.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주장도 하고요. 그렇게 되면 자문의사가 객관적 소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에요."
- 의료 자문 내용은 알 수가 있나요?
"네 의료자문 회신서에 무엇 때문이라고 적혀 있긴 해요. 하지만 그 내용이 허술한 경우가 많다고 많은 사례자가 이야기해요. 그리고 이유가 적혀있더라도 해당 의사의 이름과 과정이 공개되지 않으니까, 가입자들이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는 여전히 힘든 거죠."
"당연히 환자를 직접 보고 여러 검사 결과와 의료 기록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죠. 그래서인지 회신서를 보면 맨 아래 이 문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작성한 자료라고 적혀 있어요."
▲ 이규찬 PD |
ⓒ 이양광 |
- 조수진 씨 말 들어보면 일부러 보험사가 보험급 지급 안 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던데.
"이게 당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두 병원의 진단서가 명확하게 있고 이를 토대로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보험사 측은 계속해서 답변을 미루는 태도였으니까요. 조수진 씨는 본인이 전화를 먼저 해서 보험사 측에 결과가 나왔는지 매번 물어봐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해요."
- 왜 그런가요? 보통 보험사가 연락해서 결과를 알려주잖아요.
"의료자문 결과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일주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왔다고 안내가 왔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답변이 계속 미뤄진 것으로 보여요."
-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한 보험도 의료 자문이 있는데 비슷한 게 있나 봐요?
"발달 지연 아동 같은 경우는 사실 더 복잡해요. 한 병에 대해서 이것이 맞다나 아니다가 아니라 발달 지연-발달장애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에 의료과마다 미묘한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과에서 진단받느냐에 따라 보험 가입자에게 유리하냐 보험사에 유리하느냐 차이가 생겨요. 이 의료자문 과정에서 보험사가 본인들이 유리한 정신과로만 의료자문과를 선정한다는 게 발달 지연 아동 부모들의 주장이에요."
- 보험사는 왜 그렇게 하나요?
"간단하게 얘기하면 정신과에서 주로 사용하는 질병 코드는 F 코드라는 정신장애 관련된 코드이고 그것이 보험사 약관에는 보험 지급의 면책 코드, 즉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코드로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보험사의 경영 전략 입장에서만 보면 당연히 정신과로 의료자문과를 선정하는 유인이 있긴 한 거죠."
- 꼼수인가요?
"그거는 또 케이스마다 다를 것 같아요. 어떤 발달 지연 아동을 어느 과에서 진단받는 게 가장 정확한지는 의학적인 내용에 따라 다를 거니까요. 정말로 정신과로 의료 자문을 보내야 되는 케이스들도 있을 거예요. 핵심적인 문제는 이렇게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의료자문 병원이나 과 선택에서 협의의 여지가 거의 없는다는 거예요. 발달 지연 아동 부모들이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청소년과도 있지 않느냐고 항의했을 때 보험사는 무조건 정신과로 가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해요."
- 보험사 입장 들어보셨잖아요. 보험사는 일부러 그런 것 아니라는 입장 같아요.
"보험사는 그렇게 주장을 했고요. 약간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본인들이 보험금 부지급의 수단으로 의료자문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 부인하는 게 당연한 거죠. PD님은 보험사 입장 들어봤잖아요. 어떻게 느끼셨어요?
"일부는 이해 가는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쉽게 수긍하기 힘든 부분들은 남아요. 왜냐하면 결국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가 된 건 아니니까요. 보험사 관계자가 얘기했지만, 정신과로 보내는 의료자문 발달 지연 의료자문의 경우는 80% 정도라고 했잖아요. 대부분 정신과로 보낸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이 수치는 좀 많은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 의료자문 중계 업체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시스템으로 이뤄진 건가요?
"의료자문을 보험사가 직접 하지 않고 객관성을 위해 의료자문 중개업체를 통한다는 거예요. 의료자문중개업체가 의료자문 과정을 맡아서 하고 결과를 보험사 쪽에 회신하는 식이에요."
- 중개업자 안 끼고 하는 보험사는 없는 건가요?
"많은 보험사가 의료자문중개업체를 통해서 의료자문 진행해요. 그리고 보험사마다 주로 계약을 맺고 있는 중개업체들이 있고요. 근데 어떤 중개업체들은 보험사로부터만 의료자문을 의뢰 받아서 해요. 일반인에게는 의뢰는 받지 않고요. 그런 업체들은 더욱 보험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 보험사 의료자문의를 인터뷰 하셨잖아요. 어떠셨어요?
"그저 객관적인 의학적 소견을 적을 뿐이라는 거였어요. '의료자문에 본인의 선입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의료자문 의뢰가 중개업체로부터 오는 거고 본인은 그냥 의학적으로 객관적인 소견을 적을 뿐이다'라고요. 자신의 소견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까지는 잘 모르고 그 이후 과정 역시 나는 잘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보험사의 의료자문인데 모른다는 건 잘 수긍이 안가요. 많은 자문의가 이와 비슷할 거예요."
- 금융감독원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던데.
"금융감독원은 부모님들한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못 주는 것 같아요. 물론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엄청난 민원이 들어오는 건 맞아요. 그 때문인지 지금 검토하고 있는 민원이 1년 전 민원이라는 이야기도 하고요. 그런데 민원 결과가 1년 후에나 나온다면 그동안의 보험금 지급이 중지되고 있는 상태인거잖아요. 1년을 기다려서 받은 결과가 기존의 보험사가 안내한 제3 의료기관 판정을 받으라는 이야기고. 소비자 입장애서는 분쟁이 조절되는 게 아니라 보험사가 안내했던 말을 1년을 기다려서 다시 듣는 것뿐이죠. 의료자문이 고도의 의학적 소견이 필요하고 금감원에 엄청난 민원이 쏟아지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대안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보험은 굉장히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는 사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반인들이 보험과 관련해서 분쟁 겪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대처하기는 쉽지 않아요. 소비자에게 의료자문 관련한 과정들이 너무 깜깜이에요.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험사 측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분쟁에서 많은 것들이 분명 보험사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요. 이 균형을 바로잡을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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