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요일日문화]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예시로 보는 혼네와 다테마에

전진영 2024. 5. 19.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대방 기분 위해 본심 숨겨…분위기 읽는 일본의 언어문화
거절도 완곡하게…비즈니스에서는 필수

일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미지가 있죠. 바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 (建前)'문화 때문인데요. 혼네는 본심, 다테마에는 겉치레를 뜻합니다. 본인의 본심을 숨기고 겉으로는 우회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단순하게 '앞에서는 잘하고 뒤에서는 다르더라'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일본 사회 문화를 두루두루 아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고, 왜 생겨났을까요? 오늘은 일본의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일본에서 혼네는 진심 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의미하고, 다테마에는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 차이를 불쾌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사실 다테마에는 건축에서 쓰이는 단어로 '상량식'을 일컬을 때 쓰는 단어기도 합니다. 상량식은 목조 건물의 기둥과 지붕, 대들보 등 골격이 거의 다 완성된 상태에서 가장 마지막 마룻대(상량)를 올릴 때 지내는 축원 행사죠. 이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의 '겉치레'와 비슷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왜 본심을 숨기는데 건물의 뼈대가 등장할까요? 이에 대해 도시 괴담과 같은 소름 돋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옛날 옛적 일본에 유명한 대목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처럼 집을 짓는 일을 맡게 됐는데, 마감일을 하루 앞둔 저녁 현관 기둥을 너무 짧게 자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죠. 어떻게 해도 도저히 수습이 안 됐고, 자존심이 강한 이 대목장은 자신의 실력 미숙을 크게 자책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은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희생해야겠다'며 본인이 밤을 새워가며 다른 틀을 조합해 수리해 두죠. 결국 다음날 무사히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장은 "아무리 부부라도 아내가 언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지 모른다. 언제 헤어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실수가 언젠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왜곡된 마음이 커지면서 결국 이 대목장은 건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내를 살해합니다.

결국 아내를 잃고 난 뒤에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거울, 빗, 머리핀 등 일곱 가지 도구를 바쳐 공양하게 되는데요. 진심(혼네)을 다해 헌신한 아내를 건물의 외형(다테마에)에 집중하다 잃은 그의 모습을 따서 혼네와 다테마에를 사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인 유래라고는 하는데요.

여하튼 이것은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최대한 분쟁을 피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일본의 언어습관과 맞물리게 됩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본심을 잘 숨기고,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죠.

특히 비즈니스에서 이런 표현이 많이 사용되는데요. 가령 무리라고 생각되는 업무 지시가 떨어져도 일단"이건 무리인 것 같은데요"라고 거절하기보다는 "검토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를 거절해 관계를 망치기보다는 일단 원만하게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업무 관계에서 "검토하겠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면 거절의 의미가 큽니다.

다른 비즈니스 다테마에 예시로는 상담이나 미팅이 끝나고 잡담이 길어질 때 "아, 그런데 시간 괜찮으시죠?"라고 물어보는 것이 있다고 하네요. 이것은 서로 그만 마무리하자는 뜻인데요. 대뜸 여기서 "저 괜찮습니다"라고 하게 되면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되죠.

사실 일본 내에서도 이 문화가 오히려 발전을 저해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긴 합니다. 일본 매체 마이나비는 심지어 퇴사할 때도 "상사와 맞지 않아서", "노동 환경이 힘들어서" 등을 말하기보다는 "더 높은 스킬을 익히기 위해" 등으로 무마하곤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도 불구, 일본에서 혼네와 다테마에는 여전히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배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이나비는 "혼네와 다테마에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라며 "다테마에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혼네로만 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도 능사가 아니다"라고도 지적했는데요.

사실 일본에서 생활하거나 일본인과 많은 교류를 하는 한국 분들은 혼네와 다테마에로 한 번씩 상처를 받거나 당황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럼 진작 이야기하지", "답답하네" 등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데요. 아무리 물리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 거리가 가깝다 해도, 꽤 신선하게 다가오는 문화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