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인, 지구 침공 왜...태평양 건너는 美 함대에 대한 두려움

김창우 2024. 5.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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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츠신 『삼체』


세줄 요약

-문화혁명의 광기를 겪으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은 중국의 학자가 센타우리의 외계인에게 지구의 좌표를 알린다.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삼중 항성계에서 고심하던 삼체인들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400년 후 도착하는 함대를 띄운다.
-숨어서 상대를 먼저 공격하려는 '어둠의 숲' 상황인 우주에서 인류는 삼체인에게 "우리를 공격할 경우 그쪽 좌표를 우주에 뿌리겠다"는 협박으로 일단 위기를 모면한다.
*여기까지가 삼체 1부와 2부의 얘기다. 수천년에 걸친 그 이후의 일들을 3부에서 다룬다.

삼체 3부작. 1부 삼체문제, 2부 암흑의 숲, 3부 사신의 영생

주요 내용

인류가 우주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지 수십년, 중국의 외계 탐색 책임자는 "여기에 답하지 말라. 답장을 보내는 순간 발신지가 알려지고 우리는 너희 문명을 멸절할 함대를 보낼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 외계인은 자신을 평화주의자라 밝힌다. 하지만 이 책임자는 문화대혁명 당시 물리학자였던 아버지가 홍위병에게 맞아 죽고, 자신도 몇차례 배신을 겪으며 인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인류가 멸망해도 좋고, 당신들이 통치해도 더 나빠질 것이 없다"며 지구의 좌표를 보낸다.

태양계에서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는 세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삼중성계여서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삼체문제). 이곳에 사는 삼체인은 세개의 태양이 모두 뜨면 가사상태에 들었다가 상황이 나아지면 깨어나 다시 문명을 재건한다. 실제로 알파 센타우리는 알파 센타우리 A, B(태양계에서 4.37광년)로 이뤄진 이중성계지만 소설에서는 프록시마 센타우리(4.22광년)까지 포함해 삼중성계로 나온다. 삼체인들은 다가올 멸망 전에 안정적인 지구를 빼앗기로 결정하고 공격 함대를 띄운다. 소설 '삼체'는 지구의 반격을 피해 지구를 정복하려는 삼체인들의 음모와, 이에 맞서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삼체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지구인의 몸부림을 그린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삼체'는 '어둠의 숲 가설(Dark Forest Hypothesis)'을 배경으로 삼는다. 우리가 왜 외계인을 만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다. 우주 문명 간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한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외계 문명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는 가설이다. 위험으로 가득 찬 어두운 숲속에 들어간 사냥꾼처럼 몰래 숨어있다가 뭔가가 나타나면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쏘고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가설 자체는 몇십년 전에 나왔지만 삼체 2부의 제목 '어둠의 숲(우리나라에서 출판할 때는 '암흑의 숲'으로 번역했다)'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왜 존재를 알기만 해도 공격적으로 나설까. 가장 큰 이유는 우주 공간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항성간 항해 기술을 가진 삼체인이 보낸 공격 함대는 광속의 1%라는 놀라운 속도로도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400년이 걸렸다. 알파 센타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데도 그렇다.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물체는 2018년 NASA에서 발사한 파커 태양탐사선이다. 2025년 시속 69만km(초속 192km)에 달할 예정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초 남짓이면 도달하는 이런 속도도 광속의 0.064%에 불과하다.

류츠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드라마 삼체.


하지만 지구의 문명 수준이 낮다고 해도 삼체인들이 안심할 수 없다. 400년 후에 어떤 기술을 갖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처음으로 날아오르고 20년이 지나자 인간들은 공중에서 기관총과 폭탄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다시 20년이 지나자 로켓을 쏘아 올렸고, 또 20년 후에는 인간을 달에 보냈다. 전자공학의 발달은 더욱 눈부시다. 현재 사무용으로 쓰는 노트북 컴퓨터는 20년전 수퍼컴퓨터와 맞먹는 계산능력을 갖고 있다. 언제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해 쳐들어오는 공격 함대를 막아내고 역공에 나설지 모른다.

어둠 숲 가설은 매우 흥미롭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꼭 어리석은 선택일까. 어둠 숲에서 아기새 한 마리가 어미를 찾아 짹짹인다. 이를 숨어서 지켜보는 사냥꾼은 갈등에 빠진다. 총을 쏘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고, 더 무서운 사냥꾼이 덮칠지도 모른다. 고민하는 사이 다른 사냥꾼이 아기새를 노린다. 당신이라면 누구를 겨냥할까? 상대적으로 무해해 보이는 아기새와 다른 사냥꾼 중에서.

한걸음 더 나가면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최선의 생존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죽겠지만, 너도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거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나보다 앞선 문명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모든 문명은 총을 쏘기보다는 못 들은 척 침묵을 택할 것이다. 모든 문명을 앞서는 궁극의 문명이 있다면? 그러면 '어둠 숲'이라는 가정 자체가 무너진다.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몸을 사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 근본적으로 우주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라고 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이를 주장한 토머스 홉스는 1651년 내놓은 책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 법이 없는 원시 상태에서는 끊임없는 전쟁과 살육을 벌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고 썼다. 반면 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생각했다.

로크의 생각대로라면 우주 역시 어둠 숲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다른 문명을 멸망시키려는 폭력적인 문명이라면 내부적인 갈등으로 스스로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살아남은 문명이라면 공존과 교류를 택할 확률이 높은 셈이다.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라면 수십억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행성을 파괴하는데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어둠숲 이론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중국인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을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편전쟁에서 한국전쟁, 대만과의 갈등까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구미 국가들은 중국인에게 씻을 수 없는 좌절을 안겼다. 중국인들은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념했다. 이런 심리를 반영한 것이 400년 후에 도착하는 삼체 함대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혹은 언제 건너올지 모르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 함대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TMI

중국 작가 류츠신은 2006년 5월 과학소설(SF) 잡지인 '커환시제(科幻世界)'에서 연재를 시작해 2008년 단행본을 냈다. 원제는 지구왕사(地球往事)로 1부 삼체(三体), 2부 흑암삼림(黑暗森林), 3부 사신영생(死神永生)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체'라는 제목으로 각각 삼체문제, 암흑의 숲, 사신의 영생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2015년 SF 분야의 노벨문학상으로 꼽히는 휴고상을 받았다. 아시아 최초의 수상이다.

삼체를 쓴 중국 작가 류츠신. 2015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SF 분야의 노벨문학상으로 꼽히는 휴고상을 받았다.


어둠 숲 가설의 바탕인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왕당파의 입장에서 절대군주를 옹호하기 위해 썼다. 자연 상태에서 끝없는 투쟁의 결과가 공멸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외부의 공격에서 보호받기 위해 한명의 주권자에게 권리를 양도하기로 암묵적으로 계약했고, 여기서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던 왕당파는 회색분자라고, 교회에서도 무신론자라고 비판했다.

반면 의회파인 존 로크는 홉스와 마찬가지로 사회계약설을 주장했지만, 생명권 뿐 아니라 사유재산권도 자연권으로 봤다. 더 나아가 권력자가 권력 위임에 동의한 범위를 넘어설 경우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권력은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을 '공정한 재판관'으로 세우기로 사회구성원(시민)들이 동의한 것이다. 로크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의 토대가 됐다. 괜히 로크가 정치권력을 '시민 정부'라고 부르고,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 아니다. 물론 후세의 서구인들은 "자연 상태인 비문명국에 사회계약을 소개하겠다"며 포함과 머스킷을 앞세워 전세계에서 분탕질을 쳤지만 그게 로크나 루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삼체 문제는 삼체인의 다급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다만 아이작 뉴턴이 최초로 언급한 오랜 난제다. 물체 두개가 중력에 따라 어떻게 운동하는가(이체 문제) 예측하는 것은 매우 쉽지만, 물체가 3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반 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라그랑주 점 등의 몇가지 특수한 결과만 알 수 있다. 지구에서 삼체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태양의 질량이 워낙 압도적이라 나머지 행성과 위성의 영향을 무시하고 계산해도 대체로 들어맞기 때문이다. 알파 센타우리처럼 삼중성계라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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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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