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데이터 대신 ‘감’을 고집할까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대니얼 카너먼은 이스라엘 출신 미국 심리학자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평생의 친구였던 트버스키와 함께 1978년 발표한 전망 이론은 경제학은 물론 다양한 사회 현상 속에서 인간이 왜 그런 선택을 내리는지를 설명하는 지표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심리학을 통해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행동경제학의 초석을 놨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여느 과학처럼, 경제학은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수많은 변수가 한꺼번에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도,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를, 혹은 한 사람의 선택을 뚝 떼어 실험실에 넣고 관찰할 수 없다. ‘만약 이런 경제 정책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을 시험관 안에서 탐구해볼 수 없다. 설령 가능하다고 한들 현실 세계 경제의 너무나 복잡한 특성 탓에 “거봐, 이래서 이렇다니까!”라고 섣부른 유레카를 외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경제학은 아주 간추린 버전의 현실 세계를 모형으로 만든다. 현실을 간단히 도식화하고 수학 공식으로 간추린 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제학의 이미지다. 이는 사실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기성의 경제학은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희생하는 대신, 그럴듯한 예측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모형을 제공한다.
이렇게 현실을 모형으로 본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복잡성은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상식적으로 인간이 감정에 휩쓸리는 동물임을 알고 있다. 누구나 감정에 북받쳐 내린 어리석은 결정 탓에 유발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항상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며, 언제나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내린다고 전제한다. 이 가정 위에 우리가 아는 경제학의 엄청난 성채가 쌓아 올려졌다.
물론 경제학자들도 이 점을 알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절대다수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펴면, 머리말에 항상 ‘합리적 인간을 가정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실의 단순화’ 문제를 경고하며 경제학자들이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도 수많은 편향과 오류에 휩싸인다. 이런 실수를 범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자신이 어떤 실수를 범하는지 깨닫지 못해서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는 때때로 파국이다. 성급한 구매와 후회, 감정에 휘둘린 투자와 복구할 수 없는 손실, 이런 실수는 심지어 진로를 결정할 때도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을 들춰내는 행동경제학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
물론 인간의 비합리성과 오류조차도 경제학의 거대 이론에 포함시키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다. 만약 인간의 비합리성까지 가정한 이론 개발에 성공한다면 노벨상을 받아 마땅한 공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경제학적 편향과 오류를 깨닫고, 교정함으로써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심리학자 카너먼이 쓴 책이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북극 이누이트에게 눈을 가리키는 수십 가지 표현이 있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처럼, ‘생각’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애석하게도 우린 이를 깨닫지 못해 두 가지 종류의 생각이 있음을 간과한다. 카너먼이 제일 먼저 지적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크게 시스템1과 시스템2로 나눌 수 있다. 둘은 정반대되는 성질을 가진다. 시스템1은 민첩하고, 직관적이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일상 속 간단하고 즉흥적인 생각을 도맡아 하며, 정신적인 피로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반대로 시스템2는 느리고 게으르지만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정말 골똘히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릴 때 작동하는 생각이다. 시스템2는 평소에는 시스템1이 주도권을 잡게 내버려두다, 중요한 순간이 도래했을 때에만 지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시스템2가 작동할 때면 정신은 피로해진다. 우리가 무리했을 때 두통을 느끼게 만드는 바로 그 생각 모드다.
카너먼은 시스템1이 발생시키는 여러 오류를 독자들에게 자각시킨다. 한 예로, 책에서 카너먼은 독자에게 퀴즈를 던진다. 미국에 사는 스티브는 차분한 성격에 정리 정돈을 좋아한다.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하다.
그의 직업은 사서일 가능성이 높을까, 농부일 가능성이 높을까? 많은 사람들이 앞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스티브는 도서관 사서라고 단정 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농부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미국에서 농부의 수는 사서의 수를 압도한다. 특히 남자 농부 숫자는 남자 사서 수를 더욱더 크게 앞지른다.
우리가 스티브는 사서일 것이라고 넘겨짚은 이유는 시스템1이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원시인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면, 그는 자손을 퍼뜨릴 때까지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그 소리를 포식자의 징조로 연결 지은 원시인은 훨씬 장수하며 후손을 많이 남길 것이다.
인류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데에 시스템1이 공헌한 바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시스템2가 주도권을 잡아야 할 상황에서도 우리는 시스템1에 고삐를 맡긴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시스템1이 폭주하는 동안 나는 시스템2에 기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있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그 이유는 시스템1과 2는 ‘방법’으로써 나눈 생각의 분류에 불과할 뿐, 근육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뇌의 특정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탓에 우리는 빠르게 처분했어야 할 주식을 끈질기게 들고 있거나, 군중 심리에 휩쓸리기도 한다. 혹은 확증 편향에 빠져 스스로의 지성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1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다. 그 비결은 실생활에 밀접한 흥미로운 분야지만 비전문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분야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쉽게 풀어 설명한 것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 전국학술소통상도 수상한다.
21세기 들어 행동경제학은 다시금 각광받으며 주류 경제학에 편입되려는 시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저성장 시대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러온 대중의 관심, 그리고 동시에 기성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회의감이 일조한 바 없지 않다. 이런 시류에도 아직 행동경제학은 갈 길이 멀다. 개인과 기업 등 경제 주체 행동을 수식으로 설명하거나, 거시경제적 요소의 등락이 국부에 끼치는 영향을 서술하는 주류 경제학에 포함되기에는 장애물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과 주류 경제학 이론을 하나로 묶는 통합 이론 체계의 등장은 애석하게도 요원해 보인다.
행동경제학을 탐구하는 학자들은 기저 효과, 과신, 손실 회피 등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편향을 차례차례 발견해내고, 여기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탐구하고 있다. 만약 이 패턴을 찾는 데 성공하고, 이를 주류 경제학 이론을 보강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으로 정리해낸다면 경제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다.
홍기훈의 ‘세상을 바꾼 경제학 고전’은 이번 칼럼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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