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힙하게…MZ, 고궁을 접수하다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4. 5.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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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생과방에서 오미자차

5월 8일 오전 11시 경복궁. 봄내음 가득한 고풍스러운 궁궐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관람객들은 우아한 정자, 고즈넉한 담벼락과 너른 마당 등 궁궐 곳곳에서 ‘한복 셀카’에 한창이다.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한복을 입은 젊은이와 외국인이 전체 관람객 중 절반은 된다. 한복 차림으로 근정전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던 제주동여자중 학생들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궁 체험 프로그램으로 오게 됐는데 예쁜 한복을 입고 친구들과 추억도 쌓을 수 있어서 너무 신난다”며 “한복 입은 외국인들과 함께 사진 찍기 미션도 있어서 곧 해볼 예정이다”라며 웃었다. 한복 차림으로 궁궐을 거닐던 한 20대 미국인 관람객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보고 찾게 됐다”며 “아름다운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기쁘다”고 들려줬다.

근정전을 지나 다다른 ‘경복궁 생과방’. 생과방은 조선시대 임금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본래 비개방구역이지만 문화재청은 2016년부터 궁중 병과(간식)와 궁중 약차(음료)를 즐길 수 있는 체험 행사를 위해 이곳을 열었다. 생과방은 ‘궁케팅(궁+티케팅)’이라는 말의 원조 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치 궁궐 안 카페를 즐기는 듯한 이색 경험이 SNS를 통해 소문나면서 온라인 예매는 ‘단 1분’이면 마감될 정도다. 4월 17일부터 6월 24일까지인 올해 상반기 전 회차가 이미 매진됐다. 생과방 입구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김나현 씨는 “3년 전 대학생 시절 과제를 하다 이곳을 알게 됐는데 온라인 예매에 거듭 실패하다 이틀 전 취소표를 어렵사리 구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4회, 회차당 70분간 진행하는 생과방에는 매회 32명의 손님이 입장한다. 입장할 때는 정각 안에서 마실 차를 선택한다. 조선시대 영조가 즐겨 마셨다는 오미자차를 택하니 궁인 복장을 한 안내원이 고운 붉은빛 오미자차와 주악, 쌀강정, 금귤정과 등이 포함된 ‘주악 세트’ 다과를 내왔다. 고즈넉한 정각 안에서 다과와 차를 즐기니 수백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생과방 측 관계자는 “생과방 관람객 연령 비중은 20~30대가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전통을 또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MZ세대가 주 관람객인 만큼,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트렌디한 콘텐츠를 확충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MZ세대들이 고궁 체험, 능 투어(왕릉 탐방 여행) 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 체험에 빠졌다는 전언이다.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등 궁에서 열리는 기획 행사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라는 신조어 ‘피켓팅’을 넘어선 ‘궁케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5월 8일 수요일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좌). 경복궁 생과방에서 맛본 다과. 경복궁 생과방 행사는 MZ세대 사이 ‘궁케팅’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예매 전쟁이 치열하다(우). (조동현 기자)
고궁 인기, 어느 정도길래?

궁능 관람객 ‘역대급’ 여행사도 ‘방긋’

우선 궁능 관람객이 대폭 늘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 등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의 궁능 관람객은 전년보다 28.5% 증가한 140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급 수치다. 올해 4월까지 궁능 관람객은 490만명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 413만명과 비교해도 확연한 증가세다. 치솟는 인기에 경복궁 생과방의 경우 올해는 관람 횟수를 지난해보다 40회 늘려 총 440회를 운영한다. 참여 인원도 전년 1만2800명에서 1만4080명으로 1280명 더 받는다.

외국인 MZ들에게도 한국의 고궁은 인기 폭발이다. 지난해 외국인 궁능 관람객 수는 195만명 수준으로 전년 약 54만명에 비해 무려 262% 증가했다. 한류 인기로 고궁도 관광지로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경복궁은 한류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의 무대기도 했다. BTS는 지난 2020년 9월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을 거행했던 근정전 앞에서 한복을 입고 공연을 펼쳤고, 이는 미국 NBC 지미 팰런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외국 MZ세대에게 우리나라 궁궐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 고궁은 한국에 오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내년에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 등을 펼치는 등 전통문화 활용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이다. 고급스러운 한국 문화를 간편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층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경복궁 생과방의 타 궁궐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궁 체험 트렌드가 확산하자 문화유산 해설 전문 여행사들도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2017년부터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하는 투어 상품을 선보이는 트래블레이블의 매출 변화가 한 예다. 이용규 트래블레이블 대표는 “올해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했다”며 “특히 고궁 야간 투어가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 고객이 대폭 늘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젊은 층 고객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고궁인데 너무 모르고 있었다며 체험 후기를 들려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해 4월 그동안의 고궁 투어를 담은 책 ‘당일치기 조선여행’을 발간하기도 했다.

인기 배경은 ‘뉴트로 트렌드’

MZ들에게 전통문화는 ‘힙한 것’

고궁 체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고궁 체험 인기는 2019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주요 키워드로 ‘뉴트로’를 꼽으면서 “전통문화는 반짝 유행이나 향수에 그치지 않고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당시 연간 궁능 관람객은 1300만명을 웃돌았다. 이후 2020년, 궁능 관람객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급감했다 엔데믹과 한류 열풍 확산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숫자가 폭발했다.

무엇보다 MZ세대가 고궁 체험에 푹 빠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MZ세대는 전통문화의 현대적 변용에 열광한다”고 분석한다. 상대적으로 역사 콘텐츠를 자주 접하지 못한 젊은 층에 전통문화는 고리타분한 게 아닌 ‘힙한 것’으로 인식되고, 고궁 역시 ‘현대와 한국적인 요소가 섞인 공간’으로 여겨지면서 궁궐로 모이게 됐다는 해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색다른 경험에 관심을 두는 ‘경험 소비’ 성향이 있는 만큼 왕족들이 누렸던 장면을 보는 짜릿한 경험은 대체하기 힘들기 때문에 고궁 체험의 인기는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특정 체험 행사에서의 온라인 예매 방식은 SNS에 불편을 느끼는 어르신 세대나 외국인 등 정보 소외계층의 참여 기회를 뺏는 만큼 전화 예약, 현장 판매 등 예약 창구나 방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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