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에 묻힌 ‘의사과학자’…“의대 정원 일부, 의과학 육성으로”

임지혜 2024. 5. 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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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치료기술 개발할 새로운 프로그램 필요”
3월26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현대 의학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의사과학자’에 대한 전 세계 관심이 뜨겁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특히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의대 증원을 추진 중인 한국에서도 의료계와 의과학의 균형을 맞추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6일 ‘바이오헬스산업 육성 등을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 과제’란 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호황이 예상되는 미래 제약시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의사과학자들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의 변화 및 인류의 면역상황 변화에 따라 신종감염병이 다시 출현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선언이 간헐적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방·치료를 위한 백신과 약제 개발이나 진단키트 개발 등이 요구되는 제약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무한대인 산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 상위 10개 다국적 제약회사의 최고과학책임자(CSO) 중 7개 회사의 CSO가 ‘의사’다.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한 이도 의사과학자다.

반면 한국의 의사과학자 양성과 활동 성적은 매우 초라하다. 한국 의대 또는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연간 3800명 정도, 이중 기초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졸업생은 30명 정도로 1% 미만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40개 의과대학에 기초의학 전공자가 30명에 그친다면, 의사면허를 가진 기초의학자가 없는 대학도 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과학대학원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하는 의사면허 소지자의 지원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자리를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 졸업생이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 의과대학원 의과대학(기초의학) 의사면허를 가진 신입생은 지난 2014~2018년 5년간 총 26명(연평균 5명)에 불과했다.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졸업생은 100명이 넘으나 의사과학자로 안착하는 경우는 졸업생의 10%에 불과하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어려운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안 △연구 및 진료업무 부담 △군입대로 인한 연구중단 △연구기금 지원 중단에 따른 연구개발 단절 △관계 부처 간 통합 연계 부족 등을 꼽았다.

보건복지부. 사진=박효상 기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연구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지난 1970년부터 의사과학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특히 국가가 주도해 선도적으로 의과학자를 양성해온 미국 일부 유명 대학의 경우 의대생들이 전일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등 일찍이 의사과학자라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많이 마련하고 있다.

또 다양한 가치사슬이 연결된 사업 특성상,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을 통해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성 프로그램을 통합·발전시킬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다만 연구진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전제 조건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대 정원 확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월6일 ‘2000명 의대 증원’을 발표한 이후 의료계와 마찰을 빚어왔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 절차를 중지해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에서 항고심 법원이 지난 16일 기각을 결정하면서 전국 의대 40곳의 모집인원은 올해 3058명에서 내년도 4547~4567명으로 늘게 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은 이달 말까지 증원이 반영된 수시 모집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연구진은 보건복지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전담 의대를 새로 만들기보단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 이공계 우수한 인력이 의료계로 이탈을 가속하거나, 의과학 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 트랙으로 지정해 별도의 선발체계와 교육과정을 적용, 의사과학자를 육성해야 한다”며 “군입대와 관련해 연구의 연속성이 끊기지 않도록 대체복무 지원 등 방안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약이나 치료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공간을 통해 병원이 아닌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입법조사관은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과정을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겨두면 연속적·안정적 지원이 어려워진다”며 “국가 책임의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해 정책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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