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약 다 끝난 편의점에…본사 막무가내 “폐점 불가”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5. 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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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편의점 덩치 경쟁
‘장비 철수 거부’로 버티기

# 서울에서 편의점 A브랜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타 브랜드 전환을 위해 편의점 가맹계약을 종료하고자 했지만 본사에서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통보를 내린 것. 김 씨는 가맹계약서에 적힌 폐점 절차를 모두 따랐다. 석 달 전부터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내용증명을 수차례 보냈고 정해진 위약금 전액을 납부했다. 그런데도 본사 측에서는 폐점을 해줄 수 없다며 장비 철수를 거부했다. 김 씨가 공정거래조정원을 통해 분쟁 조정을 신청하자 그제야 “폐점을 한 달만이라도 미뤄줄 수 없겠냐”며 합의를 시도해왔고 결국 예정된 시점보다 한참 미뤄진 6월 폐점으로 합의가 됐다. 김 씨는 “나뿐 아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가맹계약 기간이 종료된 매장까지 찾아와 ‘살려달라’는 식으로 무작정 폐점을 틀어막고 있다. 가맹계약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며 “폐점이 미뤄지면서 입은 손해는 청구할 수도 없다. 피해는 피해대로 보면서 점주 맘대로 폐점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국내 편의점 경쟁이 과열되면서 ‘폐점 안 해주고 버티기’ ‘꼼수 출점’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점주가 폐점을 원해도 “폐점을 못해준다”며 편의점 본사가 버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단 김 씨 사례뿐 아니다. 예정된 5년 가맹계약 기간과 임차 기간이 종료된 편의점 점주에도 “장비와 집기를 철거해줄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례가 셀 수 없다. 개점과 폐점이라는 점주 자유가 본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편의점 직원 사이에서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점주에게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직원만 갈려 나간다”는 등 한숨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과도한 점포 수 경쟁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편의점 본사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 201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지적돼온 ‘편의점 포화’라는 고름이 이제야 터져 나오고 있다는 해석이다.

계약 끝나도 장비 철수 거부

“아예 폐점 보고 못 올리게 한다”

“위에서는 아예 폐점 보고 자체를 올리지 말라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틀어막으라고 하는 식이다. 계약 종료 기간은 다가오고 점주와 건물주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하는데 너무 막막하다.”

모 편의점 본사 영업팀 직원의 한숨이다. 실적 압박이 심하다 보니, 계약 기간이 이미 끝난 편의점인데도 폐점 보고를 올리지 말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보고를 올리지 않는 탓에 실제로는 운영을 안 하면서 숫자로만 존재하는 ‘유령 점포’도 많다는 후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편의점 본사 내 과도한 실적 압박이 자리한다. 편의점사업부는 보통 매년 9월경 다음 해 사업 계획을 짠다. 이때 대략적인 예상 출점과 폐점 개수를 계산하고 이에 따른 매출과 점포 수 사업 목표를 세워놓는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팀과 임원은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래 편의점 창업 시장이 위축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 출점 수요는 줄고 폐점 문의는 급증했다. 어떻게든 숫자를 맞추려 하다 보니 계약 기간이 종료되거나 계약 해지를 원하는 매장도 폐점을 해주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 편의점 직원들은 장비와 집기 철수를 거부하고 점주에게 통사정을 하는 식으로 당장 폐점을 막는다. 위에는 폐점 보고를 안 하고 뭉개기 일쑤다. 익명을 요청한 한 편의점업계 실무자는 “당장 실적에 민감한 부문장이나 권역장 등 윗선에서는 폐점 품의를 올리지도 못하게 한다. 현장에서 뛰는 영업 직원은 계약 종료가 임박한 점주를 찾아가 폐점이나 브랜드 전환을 늦춰달라고 하소연하는 게 주 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최소한 이번 달만이라도 넘겨달라고 할 때가 많다. 출점·폐점 목표가 월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해를 입는 건 당연히 편의점 점주다. 특히 매출 부진으로 손익분기점도 못 맞추는 ‘적자 편의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적자는 늘어만 가는데 폐점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주 스스로 문을 닫고 운영을 안 하는 편의점도 있다. 당장 인건비와 전기세라도 아끼자는 생각에서다. 한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영업팀이 총출동해 무상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주겠다고까지 하면서 폐점을 무마하기도 한다”며 “간판만 달려 있고 사실상 미운영하는 점포지만 서류상에는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유령 점포’도 많다”고 설명했다.

‘꼼수 출점’도 심각

예외 조항으로 출점 제한 우회

‘폐점 틀어막기’ 외에 편의점업계 내 무리한 점포 수 경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바로 ‘꼼수 출점’이다. 근접 거리 신규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 규약과 가맹사업법을 교묘히 우회해 새 편의점을 내는 식이다. ‘한 지붕 두 편의점’이 생기는 경우도 왕왕 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생기면 기존 점주 매출은 자연히 반 토막 난다.

최근 경기도 한 상가에서는 CU 바로 옆에 GS25가 신규 출점 준비를 하며 논란이 됐다. CU 점주가 상가 주인과 계약 연장 문제로 매장을 상가 옆 호실로 옮겼는데, 기존 CU 편의점 자리에 GS25가 들어선 것. 폭 2m 남짓 복도 하나를 끼고 편의점 두 개가 생긴 셈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존 편의점 50~100m 이내 신규 편의점 출점이 불가능하다. 점주 생존권 확보를 위해 지난 2018년부터 근접 출점을 제한한 ‘편의점 자율 규약’ 때문이다. 하지만 GS25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기존 편의점이 폐점한 곳은 60일 이내 제약 없이 신규 출점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내세웠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너무 치열한 출점·실적 경쟁

편의점 본사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점포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여럿이다.

편의점은 점포 수가 늘면 늘수록 돈을 버는 구조다. 납품 업체로부터 받은 상품을 점주에게 판매해 돈을 버는 도소매 업종이기 때문이다. 점포별 손익과는 관계없이 운영하는 편의점 매장이 많아지면 매출을 늘릴 수 있다. 납품 업체에 대한 협상력이 강해진다는 점도 이점이다.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다. 현재 전국 편의점 9개를 운영하는 심규덕 SS컴퍼니 대표는 “편의점 본사의 점포 수 집착은 광적이다. 점포당 개별 수익과는 상관없이 매장을 늘려야 돈을 버는 구조기 때문”이라며 “특히 고매출 점포는 본사 입장에서 당장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이탈을 막으려 애쓴다”고 귀띔했다.

본사 간 과도한 경쟁도 이유다. 업계 1·2위인 CU와 GS25는 현재 치열한 점포 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 점포 수 기준 1위 CU(1만7762개)와 2위 GS25(1만7390개) 간 점포 차이는 300개 수준에 불과하다. 편의점 개수에 따라 판가름 나는 총 매출 순위에서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올해 1분기 GS25 매출은 1조9683억원, 같은 기간 BGF리테일 연결 기준 매출은 1조9538억원이다. 150억원도 차이가 안 난다.

점포 수는 CU, 매출은 GS25가 업계 1위를 나눠 가진 상황이다. 올해 성과에 따라 점포 수와 매출 모두 1위에 등극하는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 경쟁이 더 과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의점 포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4년 2만6000개 수준이었던 전국 편의점 개수는 지난해 5만개를 훌쩍 넘었다. 10년도 안 돼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남은 자리가 없다시피 할 정도”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개점이 어려운 상황에서 점포 수를 유지하려다 보니 기존 점주 폐점을 막고 무리한 꼼수 출점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김진우 제스트리테일 대표는 “올해 서울시 담배권 허가 거리 제한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편의점 신규 출점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판매 품목이 비슷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편의점 산업을 위축시킨다”며 “앞으로는 편의점 브랜드끼리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폐점을 억지로 막는 등 무리한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0호 (2024.05.22~2024.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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