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나비 수호자 납치살해 사건, 은폐 혹은 조작

이인미 2024. 5.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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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제왕나비의 수호자>

[이인미 기자]

 <제왕나비 수호자> 스틸컷
ⓒ 넷플릭스 제왕나비 수호자
 
사건 개요  

2020년 1월 13일 월요일 늦은 오후, 멕시코의 '제왕나비 보호구역' 지킴이로 활동했던 환경운동가 '오마르 고메즈 곤잘레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자체 의원들의 경마장 친목모임이 파한 직후였다. 다음날 실종신고가 접수되자 경찰과 검찰은 느릿느릿 대충대충, 수사에 착수했다. 가족과 이웃들은 '제왕나비 보호구역'의 불법 벌목 범죄집단이 오마르를 납치했다고 주장했다. 타당한 주장이었다. 오마르는 이미 한 차례 납치됐다 풀려났던 전적이 있는 터였다.

가족과 이웃들이 수색을 촉구하는데도 검찰은 웬일인지 꾸물거렸다. 결국 '막대기를 시집 보내느니 내가 대신 간다'는 마음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수색대를 꾸렸다. 검찰은 시민 수사대의 활동 중간중간에 슬그머니 뛰어들어 수색하는 시늉을 내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행방불명상태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니, 언론과 국제 NGO가 '오마르 실종사건'을 주목하게 되었다. 급기야 강하고 빠른 수색과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제서야 검찰은 못 이기는 척, 그러나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이게 웬일인가, 마치 거짓말처럼 숲길의 한 웅덩이에 오마르의 시신이 나타났다(1월 29일). 시민 수색대가 샅샅이 수색하며 이미 거쳐간 웅덩이였다. 그들이 그곳을 수색할 때 오마르의 시신은, 있지도 않았다.

시신발견 이후 검찰의 수사는 더욱더 빨라졌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검찰은 오마르의 사인을 '익사사고'로 공표했다. 검찰은 오마르의 시신이 최소 2주 이상 물 속에 잠겨있었다고 설명했다. 물 속에 오랫동안 잠겨있었는데도 시신에 익사 관련 훼손이나 변색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누군가 합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은 '겨울이라 그렇죠'라고 둘러댔다. 또, 오마르의 아들이 '바지 주머니에 자동차 키가 있었을 텐데요?' 하고 물으니 처음엔 '없었다'고 하다가 이튿날 태연하게 자동차 키를 가져왔다.

육안으로 뻔히 보이는 시신의 상처들에 대해서 검찰은 못 본 체했다. 심지어는, 시신 발견 전날 밤 낯선 사람들이 무언가 묵직한 것을 옮기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인근 주민들 사이에 떠돌았지만 검찰은 그들 중 누구도 소환하지 않았고 심문하지 않았다. 혹은, 검찰이 부를세라 무서웠던 그들은 증언을 지레 포기한 상태이기도 했다.

카르텔의 힘 

실종된 지 16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오마르가 활동하던 공간은 '제왕나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멕시코 미초아칸 '엘로사리오'였다. 숲이 꽤 울창해 제왕나비들이 지내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오마르를 비롯한 보호구역 지킴이들이 그곳에 나무를 계속 심으며 제왕나비들을 세심하게 돌본 결과, 그것에 보답이라도 하듯 제왕나비들은 매번 '엘로사리오'로 날아왔고 거기서 평화롭게 지냈다.

사실 제왕나비들은 캐나다 남부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엘로사리오'에 정착해, 겨울을 지내는 거였다. 캐나다에서 날아올라 미국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의 하늘을 가로질러, 또 멕시코 이달고를 거쳐 '엘로사리오'에 이르기까지 장거리를 비행하는 제왕나비의 거대 행렬은 매우 장관이어서,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곤 했다. 그들의 평화로운 대이동은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자아냈다. 제왕나비의 황홀한 날갯짓에 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날갯짓을 뒤따르듯 관광객들이 '엘로사리오'를 찾았다. '엘로사리오'는 제왕나비 덕분에 멕시코의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엘로사리오'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제왕나비 천국이었다.

그런데 제왕나비만 보면 평화로운 천국이지만, 인간군상들을 보면 그곳은 정작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다. 제왕나비를 결코 존중하지 않는 범죄조직들은 커다란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베어내서 미국에 팔아넘기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불법 벌목이지만 그들은 정부 및 검찰과 끈끈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에 처벌 당하지 않는다. 처벌은커녕 고발되어도 수사 한 번 받는 일이 없다. 말 그대로 환경파괴 치외법권 지대. (결국 제왕나비는 최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그뿐 아니다. 범죄조직들은 불법 벌목을 종료한 후 그 자리에 불을 질러 숲을 영구적으로 파괴한 뒤, 아보카도 농장을 짓는다. 여기서 수확한 아보카도의 70%는 정식 통관절차 없이 미국으로 팔려나간다. 범죄조직을 대놓고 옹호하는 검찰이 있고, 범죄조직의 수확물을 대놓고 구매하는 대미 무역구조가 있고, 또는 외교적 정치적 업적을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이 있어, 불법 벌목과 아보카도 농장을 운영하는 범죄조직들은 도무지 사라질 줄 모른다.

그래서 마침내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소총과 마체테로 무장하고 '제왕나비 보호구역' 지킴이를 자처하며 활동했다. 동시에 여러 언론을 통해 '제왕나비 보호구역'을 꾸준히 이슈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일에 종사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월 중순 실종됐다 1월말 시신으로 발견된 '오마르 고메즈'다. 요컨대 오마르는 '범죄조직-정부-검찰' 카르텔의 강력한 반대자였던 것이다.

무엇을 지키며 사는가?

상영시간 91분 동안 다큐멘터리 <제왕나비의 수호자>는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지키며 사는가?" 관찰컨대, 검찰-범죄조직-정부 카르텔은, 똑바로 정직하게 대답할 리 없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며 사는 게 틀림없다. 그들이 연신 입에 올리는 법치와 공정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마르를 비롯한 지역주민들과 '제왕나비 보호구역'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제왕나비를 지키며 산다"고 응답할 것이다. 제왕나비를 지키는 일은 생태자연을 지키는 일이며, 결국은 인간의 생명을 포함해 모든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그들은 안다. 실제로 영화에서 오마르의 친구들, 이웃들은 정말로 그렇게 응답한다. "우리는 제왕나비를 지킬 것이다"라고!  

끝으로,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세상 어디에나 자기들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그것도 대부분 안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에효~' 하는 한숨이 터져나올 수 있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 카르텔의 한 자락을 차지함에도 뻔뻔스럽게 항상 자신이 제왕나비를 아낀다고 주장하며 당선된 정치인(주지사, 실바노 아우레올레소)이 '조직범죄 가담 및 횡령' 혐의로 수사받는 중이라는 자막을 읽을 때면, '역시나' 싶어 정치(인)를 향한 한숨이 더 깊어지고 더 길어질지 모르겠다.

또, 영화 내내 자기만이 이 사건의 내막을 정확하게 안다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우리가 수사를 잘했다"고 주장한 살인사건 담당검사가 '(인터뷰 내용 중) 어떤 정보가 선택될지 두고보겠다'고 슬그머니 엄포 놓는 장면을 대할 때면 분노가 치밀 수도 있다. 그 검사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자기가 제공한 정보를 조작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표정변화 없이 냉랭하게 인터뷰에 응해왔던 그는, 남들도 자기처럼 행동한다는 결론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은폐하거나 조작하거나...

결국은 '무엇을 지키며 사는가?'에 대한 대답의 지점에서 분리되는 두 그룹 중에서 어느 쪽을 진지하게 믿는지에 따라 절망과 희망이 갈리리라 본다. 모쪼록 제왕나비들이 절망과 희망 중에서 부디 희망 쪽을 선택해주기를 바란다. 비록 오마르는 이 세상에 없지만, 수많은 제2, 제3, 제4의 오마르들을 바라보며 허다한 제왕나비들이 희망을 품어주기를, 그 희망의 힘으로 오래도록 평화롭게 날아다녀주기를 소망한다.
 
 영화 <제왕나비 수호자> 스틸컷
ⓒ 넷플릭스 제왕나비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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