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글로벌 공급망의 모세혈관, 국제물류가 막히고 있다

2024. 5. 1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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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온라인 상거래가 대세를 이루며 ‘택배’는 어린아이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된 세상이다. 그러나 정작 그 근간인 ‘물류(物流)’는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다. 물류의 사전적 의미는 ‘물적 유통’ 또는 ‘필요한 양의 물품을 가장 적은 경비를 들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원하는 장소에 옮기는 것’이다. 물물교환이 시작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발전시켜 온 분야가 물류다. 원시적인 등짐에서 시작됐지만 물동량이 많아지며 자동차와 상선으로 진화했고, 신속한 운반을 위해 항공기까지 활용한다. 최근에는 제조업체에서 사용자까지 이송 과정이 모두 전산화돼 원격으로 조정·통제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는 자신이 주문한 물품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국가는 물론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물류는 인체의 모세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잘 보이지 않는 모세혈관이 인체에 영향을 주듯 글로벌 공급망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분배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공급망은 무너지고 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창궐한 시기에 너무나 생생하게 체험한 일이다.

「 디지털 시대의 국제물류, 공급망의 핵심 연결고리 역할
세계 20위권 한국 물류, 영세업체 난립하며 경쟁력 저하
물류행정 플랫폼 구축 등 효율성 높이는 제도 개선 시급
세계 최고 수준 조선·해운과 시너지 내도록 관리 절실

올해 국제물류 15조5000억 달러

우리나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며 지난달까지 6개월 연속 증가했다. 그러나 국제물류 확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하역작업이 한창이다. 뉴스1

최근 들어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물류 산업을 국가 성장을 담보하는 동력산업으로 간주하고 전략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업계에선 2020년 9조1000억 달러(약 1경2242조원)를 기록했던 글로벌 물류 시장의 매출액이 올해 15조5000억 달러(약 2경855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기술과 물류를 접목한 미국의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와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물류 산업이 이처럼 급성장한 배경은 제조와 유통, IT분야를 망라하는 융합 산업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해운 능력을 보유한 한국이 물류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제도적 미비와 관계자들의 전문성·인식 부족으로 한국의 물류산업 수준은 세계 20위권에 머물고 있다. 막혀 있는 ‘모세혈관’을 뚫기 위한 진단과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다. 가장 우선 손봐야 할 부분은 난립하고 있는 영세 국제물류 업체의 정리와 경쟁력 제고다. 정부는 1996년 기존에 허가제였던 물류업체의 인허가 제도를 등록제로 완화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소규모 영세업체가 국제물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2023년 기준으로 무려 5221개의 업체가 등록돼 있는데, 이 가운데 자본금이 3억원 이하인 영세업체가 85%나 된다. 심지어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이 물류 사업을 하겠다고 등록한 업체도 있다. 전문인력 확보는 고사하고 직원들의 필수 교육도 어려운 실정이다. 살아남기 위한 과당경쟁으로 파산하는 업체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 우리 업체의 신용을 추락시키며 해외 진출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한다면 우리 해운사의 물류마저도 외국 업체에 넘어갈지 모른다. 일본은 종합해양정책본부를 통해 중앙에서 통제하며 경쟁력 있는 450여 업체만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빨리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능력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경쟁력 있는 정예 업체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물류 산업 전담할 컨트롤타워 필요

둘째,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지방자치단체에 분산된 관련 업무를 일원화해 컨트롤 타워를 설립해야 한다. 국제 물류 사업을 챙겨야 할 해양수산부는 정권 교체 때마다 존폐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근원적으로 물류 산업이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를 넘나들다 보니 타이밍을 놓치고, 엄청난 인적·물적·시간적 낭비를 반복하는 게 현실이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가져 왔던 한진해운 파산이 되풀이돼선 안되겠다. 지금이라도 물류 행정을 일원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물류의 99.7%가 해상 운송임을 고려해 담당 업무를 해양수산부로 이관하는 게 해결책이다. 필요하다면 물류 산업을 전담하는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물류 산업을 전담하는 부처가 만들어진다면 조선, 해운, 수산, 물류 등 전 해양산업 간 유기적인 협조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진 해양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등은 중앙 통제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홍해 물류대란’ 디지털 플랫폼으로 뚫어야 한다. 사진은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홍해에서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침몰 중인 영국 화물선 '루비마르'호의 모습. EPA=연합뉴스

셋째, 4차 산업기술을 이용한 물류 행정 플랫폼 구축과 전문인력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물류 행정은 대면(對面), 수기(手記), 종이 사용을 고집하고 있어 낭비가 심하다. 복잡한 물류 행정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한편 전문인력 확보에 시간이 걸리고, 아직 대외인지도가 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극적인 홍보 대책과 함께 전문 지식을 갖춘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지난 1월 12일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중동지역 해상물류 긴급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급변하는 국제무역 환경에서 효율적인 물류 체계 구축은 국가 경쟁력 제고와 연계된 핵심 사안이다. 중동 등 세계 특정지역의 정세가 불안정하면 물류에 비상이 걸리고, 제품의 가격을 직격하는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물류산업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발등의 불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다. 필자는 해양 안보를 위한 국가 해양력 강화 차원의 조선, 해운산업 중흥 방안을 다룬 기고(중앙일보 2월 23일자)에서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는 물류 산업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연결고리이자 블루오션에 대한 정책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은 경제를 넘어 해양 안보의 핵심 과제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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